남북 정치문화 차이 크다/북,선발대·TV생중계 관례 이해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것은 북의 협상전술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정치문화 차이입니다.』
1일의 판문점 실무대표접촉에서 몇개 항목이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데 대한 통일원의 설명이다.우리측 윤여준대표도 실무접촉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합의를 못이룬 가장 큰 원인으로「국제관행에 대한 북의 이해 부족」을 꼽았다.
한마디로 북한이 대표단·회담형식등에 선뜻 합의하면서도 선발대·방송보도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협상전술 차원보다는 지난 반세기간에 축적된 남북한간 정치문화 차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남북 정치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두 체제에서 남의 대통령과 북의 수령이 차지하는 위치다.
자유민주체제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출,일정기간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이에 비해 북한 체제에서 차지하는 수령의 위치는 대통령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초월적이다.
북이 지난 84년부터 체계화하기 시작한 수령논에 따르면 북한은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룬 사회며, 수령은 대중에 사회정치적인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로 규정돼 있다.
최고 권력자에 대한 남북의 이같은 인식 차이는 의전등 절차 문제를 다루는 실무 접촉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 같다.
정상회담 의전과 관련,남측 생각은「남북정상이 분단 반세기만에 만나는 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치르자」는 것이다.
정상회담 20일전에 1차 선발대를 평양에 파견한 후 또 2차로 최종 점점반을 보낸다는 것이다.이는 국제관례에 따른 것이다. 또 이 역사적인 회담을 TV를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생생히 알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얘기다.
반면 북측 실무자들은「정상회담은 수령님의 고유 권한」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의 장소·시간·수행원 규모등 비교적 큰 문제만 정해놓으면 충분하지 남측 주장대로 몇분단위로 일정을 짜는 것은 수령에 대한 일종의 결례라는 설명이다.
정상회담 배석자 문제만하더라도 북측은 『수령님이 정상회담을 하다가 관계장관을 부르면 배석자 수가 늘어날 수 있는 것이지 남측 주장대로 그렇게 2명이다,3명이다 하는 식으로 못박을 수 없는 문제』라고 접근했다.
선발대 문제만 하더라도 북의 백남준대표는 『민족 내부의 일이니 우리가 어련히 준비를 잘하지 않겠느냐』며 『선발대는 회담 직전에 와서 우리측 준비상황만 점검하라』고 말했다.
결국 남북은 실무접촉을 통해 이번 회담을 국제관례를 참작한 민족내부의 정상회담 형식에 담아 치를 것으로 관측된다.〈최원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