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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째 임기 마친 獨 바이츠제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獨逸대통령의 퇴임을 全국민이 아쉬워 하고 있다.남녀노소.정파.종교.인종을 초월해 「독일의 양심」으로 존경받아온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지난 10년간에 걸친 2대의임기를 마치고 1일자로 로만 헤르초크 신임대통령 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바이츠제커대통령의 퇴임에 즈음해 포르자 여론조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그를 「독일역사상 최고의 국가수반」으로 평가하고 있다.또 독일 최고권위의 주간신문인 디 차이트는 『만약 독일국민들이 이상적인 대통령을 인공적으 로 만들수 있다면 다름아닌 바이츠제커대통령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우선 그는 지성과 순수를 겸비한 인물이었다.문제의 본질을 재빨리 꿰뚫었지만 결정을 내리는데는 언제나 신중했다.재치와 유머도 있었다.언제나 약자와 서민들의 친구였다.노동자나 학생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른바 「권력의 오만」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다.
기민당원이었지만 그는 결코 어느 특정집단.특정정파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다.이 때문에 그는 오히려 좌파인사들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았다.독일통일의 실마리를 제공한 故브란트총리의 동방정책이 지난 72년 연방하원에서 비준되도록 도운 사 람은 바로 당시 야당인 기민당 소속의 바이츠제커였다.
당시 집권당과 야당의 의석이 똑같이 2백48석이어서 부결될 위기에 처했으나 그는 두번이나 연설을 자청,야당인 기민당의원들을 설득시켜 이를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되기 직전인 83년 발간한 『독일역사는 계속된다』라는 책에서 그는 이미 당시 蘇聯을 고립시켜서는 안되며 소련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역사의 흐름을 읽는 혜안도 가지고있었다. 그의 인간됨됨이를 가장 잘 드러내 보인 것은 무엇보다도 지난 85년 2차대전 종전 40주년 기념행사에서의 연설이다.『죄가 있건 없건,젊거나 늙었건,우리 모두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구제받는 비결은 바로 과거를 잊지 않는것이다』-.이 연설은 21개 외국어로 번역돼 독일의 대외이미지를 개선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용기있는 정치가였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등불이었다.특히 통일 이후 경제난과 가치관의 혼란으로 독일국민들이 점차 보수우경화하는 경향을 보이자 그는 분연히 일어서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렸으며 필요한 경우 헬무트 콜총리 정 권도 가차없이 비판했다.이 때문에 그는 가끔 콜총리와 불화도 있었지만 독일대통령직을 「국민과 거리가 먼 閑職」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일하는 자리」로 바꾼 대통령이 됐다.
1920년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나치군대위로 2차대전을 마친 그는 옥스포드.괴팅겐大등에서 법률과 역사를 전공(법학박사)한 뒤 54년 기민당에 가입,69년부터 하원의원.하원부의장.베를린시장등을 거쳐 84년 7월1일 대통령에 당선됐 었다.
[베를린=劉載植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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