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 책] 당당하게 살거야, 죽음이 오는 그날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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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힘들어도 괜찮아
오카 슈조 글,
다치바나 나오노스케 그림,
고향옥 옮김,
웅진주니어,
152쪽,
8000원,
초등 3∼5학년

“난 비로소 알았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걸. 모두 괴로움이 있다는 걸. 모두 괴로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야.”(122쪽)

진행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특수학교 6학년 소년 시게루. 그를 통해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이야기다. 손가락 하나 제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시게루는 “아무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래도 조금은 즐거우니까. 내가 죽을 때까지가 나의 일생이라면, 그날이 올 때까지 즐기면서 살고 싶어”라고 말한다.

저자는 20여 년 동안 장애아이들 곁을 지켜온 특수학교 교사다. 1987년 『우리 누나』를 발표한 뒤로 줄곧 장애아를 소재로 글을 써왔다. 이 작품 역시 그가 만났던 실제 인물이 모델이다. 장애를 안고 살았던 그 소년은 스무 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에게 보내는 진혼곡이라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썼다”는 저자의 다짐 덕일까. 이야기 속 주인공은 시종일관 당당하다.

“우리를 남들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건 장애우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외면하지도 동정하지도 말아 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그 메시지를 깊이 있게 전한다. 이 세상 누구라도 제 나름의 괴로움을 안고 살고, 또 누구에게나 인생은 딱 한 번뿐이고, 그 인생을 즐기며 가꿔나갈 소명은 누구에게나 주어졌다는 것. 장애를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모두에게 주어진 운명. 우리 모두 마찬가지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아 시게루의 삶을 동화처럼 마냥 예쁘게만 꾸며놓은 것은 아니다. 도리어 ‘잔인하다’고 느껴질 만큼 비극적이다.

시게루가 병에 걸린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뛰어 놀았다. 하지만 조금씩 굳어지는 몸.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밥을 먹을 수도, 몸을 뒤척일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게루가 아프자 아빠는 술을 자주 마셨고 엄마와 자주 싸웠고 결국 집을 나가 버렸다. 엄마는 늘 짜증을 냈고, 여동생은 몸이 불편한 오빠를 얕잡아 보고 귀찮아 했다.

시게루의 삶이 고단한 건 당연했다. 남이 먹여주는 밥도 맘껏 먹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안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엄마가 자꾸만 짜증을 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더 살찔까 봐 두려웠다. 학교 급식을 더 먹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시게루는 먹는 게 시원찮구나. 많이 먹어야 힘이 나지.” 모리 선생님은 쉽게 말했지만 나에게는 먹지 못하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17쪽)

이 책은 이렇게 장애아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어줍잖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또 ‘그래도 내 처지가 시게루보다는 낫다’는 식의 같잖은 우월감과도 거리가 멀다. 대신 자신의 삶에서 어떤 가치와 희망을 찾아야 할지를 돌아보게 해준다. 시게루는 “변하지 않는 것 중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갖자’고 결심했다.

상대적인 빈곤이나 성적 문제, 외모 고민과 집단 따돌림 등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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