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누드(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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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구상 최초의 누드 조각작품 모델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아폴론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신과 레토여신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아폴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춘 남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폴론을 모델로 한 초기의 누드조각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보다 명료하고 이상적인 아폴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던 탓이다.
아폴론이 오늘날의 서구적 미의 개념을 충족시키는 예술작품 모델로 모습을 바꾸는데는 1백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은 곧 미 개념이 단계적으로 변해갔음을 뜻한다. 기원전 5세기께 이르러 남성적인 근육 하나하나를 추적하거나 피부와 뼈가 맞닿는 곳에서 어떻게 긴장하고,또 어떻게 이완하는가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16세기에 라파엘로가 여성 모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기까지의 2천년동안 인체의 누드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에서 줄곧 남성모델이 여성 모델을 앞질러 왔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거의 모든 예술가들은 벗은 몸매의 아름다움을 비교하는데 있어서 남성쪽을 여성쪽보다 항상 우위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라파엘로로부터 시작된 누드예술에 있어서의 여성 선호는 그로부터 2백여년이 지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확실하게 정착됐다. 미술사가들은 여성이 누드 모델로서 최종적으로 지위를 확립한데는 여성특유의 「관능적」인 감각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추상적인 근거로 볼 때 과연 여성의 육체가 남성보다 조형적으로 더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자주 논난돼오고 있다. 「관능」의 차원에서가 아니라면 남성의 누드가 여성의 누드보다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30대 처녀사진작가가 남성누드 사진전을 열어 화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예술적인 관점에서라면 특이할 것도 없으련만 「누드의 아름다움은 역시 여성」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는 탓에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보는 사람에 달려있다. 남성 모델이든 여성 모델이든 누드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보는 사람에게 성적인 욕망을 자극했다면 그것은 그릇된 예술일 수 밖에 없다. 굳이 「성」과 관련지으려는 생각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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