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와 직접대화 “한국 따돌리기”/북한 판문점대표부 왜 설치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평화협정도 본격거론 준비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MAC)를 대신할 새로운 협상기구로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하고 이 사실을 유엔군측에 통보한 것은 ▲미군과의 대화·접촉 지속 ▲한국 따돌리기 ▲평화협정 부각 등을 위한 면밀한 계산의 결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유엔군(미군)측과 판문점에서 계속 협상하겠다고 밝힌 것은 일단 미국에 대화의사를 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6월초 제네바에서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이 열릴 것이란 관측이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분명한 대미 유화자세인 것이다.
사실 북한이 지난달 28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며 군사정전위에서의 일방적 철수를 통보한 이래 정전위의 실무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미국과 3단계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분쟁방지에 관심이 크다」는 유화자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유화자세는 어떻게 해서든 판문점 접촉에서 한국군을 따돌리려는 속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심각한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유엔사는 이와관련,북한의 제안을 논의하기 위해 정전위 비서장회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일단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나 어쨌든 유엔사의 결정과 그에 따른 앞으로의 향배가 주목될 수 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북한의 중대한 도전으로 보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핵사찰 문제로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북­미 고위급회담을 양국관계 개선 등의 「일괄타결」 주장을 관철시키는 정치회담으로 끌고가려 하고 있다』면서 『이번 판문점 대표부 설치도 그 연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미국은 북한의 핵투명성을 보장받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틀을 준수토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북한은 경수로 지원,금수조치해제,나아가 양국관계개선 등을 얻어내는데 집착을 보이면서 이제 「평화협정」 문제까지 정치적 일정에 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북한이 아무리 평화협정 체결 및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주장해도 미국이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룰 생각이 없는 만큼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그칠 공산도 없지 않다.
한미 양국이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의 전제조건에서 남북 특사교환이라는 고리를 풀어주자 북한은 대미협상에 큰 기대를 건듯하다. 그리고 이 기회에 한국과의 대화를 기피하고 협상대상에서조차 제외시키려는 의지를 「기술적으로」 드러낸 것이다.<유영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