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힐러리처럼' 할 수밖에 없는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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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힐러리를 보시라. 힐러리도 대처를 잘해서 무마가 되지 않았느냐. 그렇게 생각하시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스캔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달구던 지난주, 권양숙 여사가 변 전 실장의 부인과 위로차 점심을 함께하며 했다는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힐러리처럼 하라는 말은, 잘 알려져 있듯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사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 추문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의 힐러리처럼 대처하라는 뜻이다.

 그때 힐러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권 여사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인지, 변 전 실장 부인도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며 힐러리처럼 대응했다. “이러고 저러고 얘기해도 나는 하나도 안 믿는다. 남편을 믿지 다른 건 하나도 안 믿는다.”

 권 여사의 발언이 주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나와 내 남편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하고 감정이입을 해보는 여성이 많은 모양이다. 결혼 연차가 짧을수록 “배우자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어도 참으라니, 전근대적 발상”이라는 반응이 많다.

 그런데 15년, 20년 넘은 여성들의 얘기는 좀 다르다. “당연히 절망하고 분노하겠지만, 종국에는 힐러리처럼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체념이 많다. ‘힐러리처럼 하라’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남자의 아내가 이런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따를 수밖에 없는 일종의 매뉴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지간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이 아니라면, 대개 ‘○○이 엄마’나 ‘△△△씨 부인’으로 사는 게 현실이다. 김 부장의 부인, 박 이사의 부인, 이 지점장의 부인…. 그것이 15년, 20년 넘게 가정을 지켜온 그녀들이 남 앞에 내밀 수 있는 ‘명함’일 것이다. 거친 세파를 헤쳐가다 보면 배우자의 실직이나 외도, 혹은 사별 등으로 인해 그 명함을 빼앗기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녀들에게 그런 상황은 공포다. 그것도 아주 심한 공포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미간을 찌푸릴지 모른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누구누구 부인’으로 살아온 여성에게 그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건 어둠의 포스(force)에 맞서 싸워온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다스베이더가 ‘실은 내가 네 아버지’라고 폭탄 선언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거창하게 말하면 남의 정체성을 흔드는 문제라는 얘기다.

 많은 이는 힐러리가 당시 취한 관대한 태도를 “정치적 야망에 불타 남편의 외도를 전략적으로 눈감아줬다”고 비난한다. 김 부장의 부인보다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자리가 더 포기하기 힘든 건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힐러리의 심리에 여성으로서의 두려움이 전혀 깔려 있지 않았다고 보긴 힘들다. ‘힐러리처럼’이라는 매뉴얼이 기혼 여성 사이에서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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