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여행제한 일부解除 조짐 식량구하기엔 불법묵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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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최근 귀순자들의 잇따른 증언에서 北韓주민들이「식량구하기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정확한 실태는 알려지지 않는 가운데 일부 귀순자들의 증언은 주민여행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 주민들은 여행의 제한을 받아왔다.
즉 자신이 거주하는 市.郡경계를 벗어나 여행하려면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했다.
여행중에도 수시로 있는 기차승차 검문이나 도착지 확인에 응해야 했다.
민족통일중앙협의회가 90년 12월에 발간한『여행자를 위한 북한편람』에는『관혼상제가 있는 경우에 허용되는 사적인 여행을 제외하고는 개인의 사사로운 여행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열차승차권을 사려면 귀향 4일전에 여행지 역전분주소에 신고해야 한다.
여행중엔 서너차례의 검문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역두 안전원」과 열차승무원이 승객의 차표및 여행증을 검사하는데 여행증이 없으면 단속칸에 감금됐다가 다음역 안전원에게 인계되거나 경범죄 수용소로 넘겨진다는 것.
북한이 이처럼 주민이동을 제한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기업소.협동농장등)과 주민거주지를 한데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인구이동이 적은 만큼 교통체증이나 여객운송수단의 부족으로 쩔쩔매는 일은 없다.
그러나 최근 귀순자들의 증언은 식량을 구하러 여행길에 나선 주민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일가족 귀순자인 여만철씨의 부인 이옥금씨는 5월2일의 공동기자회견에서『92년부터 식량난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그래도 그때는두세달씩 미뤄가면서도 배급을 주었는데 93년 8월부터 중단됐다.여행증을 끊어 황해북도 시골을 네차례 다녀왔다 .농촌에는 양말.수건.화장품 같은 것이 매우 부족하다.직매점에서 이런걸 사서 농촌에서 바꿔온다고 밝힌바 있다.
이는 식량구하러 나선 여행객들은 친인척대상으로 물물교환식 보따리장사를 하고 있고 농촌의 물물교환 지하시장을 당국이 묵인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또다른 증언이 있다.
93년 9월 중국유학중에 귀순한 이정철씨는 지난 7일 북한농업연구회 창립세미나에서 92년 8월에 북한을 다녀왔는데『기차안은 쌀구입하러 황해도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분명히 여행증명서도 없이 무단승차였을텐데 열차안전원들도 이들을 묵인해주는 것 같았다』면서『직장에서도 식량구입하러 간다면 휴가를 내주고 증명서도 발급해준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동국대의 金泰弘교수는『식량조달을 위해 유동인구가 발생하고 여행허가가 늘고 있다는 것은 식량난이 생산체계.
유통체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라며『농산물 유통체계(제도권)밖의 교환.거래가 이뤄지는 걸 주목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무허가여행을 방치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北韓의 농업정책은 점차 국유화방향으로 나가면서 식량부족과배급체계상의 문제때문에 유통체계는 느슨해지는게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게한다.
〈兪英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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