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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24시>1.경상도처녀와 결혼 방글라데시 청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서울에 3년9개월동안 머물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모하메드 사이플 이슬람씨(23)에게 한국은 이제 남의 나라가 아니다.아내의나라이고 그 자신이 귀화를 신청해놓고 있는 미래의 모국이다.그러나 그에게 한국은 아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나라로 느껴진다.그만큼 한국이란 사회가 이방인에게「가혹」하기 때문이다.
2년제 다카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과정에서 1년동안 경영학을 공부한 이슬람씨는 학창시절 내내 국비장학생이었다.
나라 형편이 좋았더라면 미국이나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을것이다.하지만 그는 가난한 제3세계국가의「꿈만 크고 빈주먹인」청년이었다.한국에서 돈을 벌어 공부를 계속하기로 작정한 것은 이때문이었다.
90년8월 현지의 한국인 브로커에게 거금 2천1백60달러나 주고 3개월 관광비자로 첫발을 디딘 한국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3D업종의 영세공장을 전전하며 선반공과 봉제공으로 겪은 비인간적인 대우와 욕설.폭행.불법체류자라는 불 리한 신분때문에 당한 위협과 상습적인 체임….그래도 한달평균 40만~50만원을 벌기 위해 야근과 잔업을 마다않고 쉴새없이 일했다.
그러던중 91년12월 서울종로구 충신동의 한 봉제공장에서 한국여성 羅敬順씨(24)를 만난 것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언어와관습이 전혀 다른 이역만리에서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직장선배격인羅씨는 눈물겹도록 따스한 인간미를 보여주었다.
羅씨는 고향인 경북김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85년8월 상경,봉제공장을 다니면서 야간여상을 마치느라 겪었던 고생과 설움을생각했다.그를 위로한것은 동병상련의 심정 때문이었다.
시다(보조)인지라 실수가 많은 이슬람씨에게 늘 웃으면서 용기를 북돋웠다.
회교도로서 금기인 돼지고기 삼겹살을 먹지 않아 소주집에서 한국인 동료들에게 면박당한 것을 보고 자취방으로 불러 불고기를 해먹이기도 했다.
사랑을 확인한 두사람은 지난해 9월14일 양가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진관에서 간이결혼식을 올렸다.羅씨를 안심시키기 위해이슬람씨는 한국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모상일이라는 한국이름까지지었다.대신 羅씨는 남편을 따라 회교오 입교했 다.
그러던중 국적취득에 필요한 변호사 선임료 3백만원을 마련하려다 그만 사기꾼에게 걸려들었다.전재산인 서울용산구후암동 전세방보증금 1천만원을 송두리째 날렸다.
월세 15만원인 미아리의 허름한 여인숙으로 거처를 옮긴 두사람은 재산을 되찾기 위해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둔 상태.
체류만기일인 5월26일은 다가오는데 마음만 급하고 되는 일이없다. 『한국에서 3년9개월동안 살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너무 많습니다.사람들도 알고 나면 친절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냉정한 것 같고 많은 일들이 합리적으로 처리되지 않는경우가 많아요.』 이슬람씨의 말은 우리사회에 대한 고발만 같다. 〈李夏慶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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