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자나눔장터] '위·아·자' 3년 개근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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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자 나눔장터’에 3년째 참여한 이건호(앞줄 왼쪽)군과 어머니 주혜경(43)씨. 올해에는 건호 외사촌인 함현석(앞줄 오른쪽)군도 함께 나왔다. [사진=김태성 기자]

16일 이건호(경기도 고양시 지도초등학교 6년)군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동화책.장난감.옷가지 90여 점을 챙기고 엄마.아빠와 함께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북측광장 위아자 나눔장터. 행사 시작보다 한 시간 이른 오전 11시 도착한 건호 가족은 돗자리 위에 정성껏 챙긴 물건을 가지런히 깔았다.

건호 가족은 '위아자 나눔장터'에 3년째 개근했다. 2005년부터 매년 나눔장터에 참가, 나눔과 베풂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쓸 만한 물건은 버리지 않고 위아자 장터를 위해 1년 동안 모으는 습관이 생겼어요."

아빠 이화진(47.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씨는 위아자 나눔장터에 참가하면서부터 건호의 마음 씀씀이가 부쩍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건호네 가족이 장터에 가져온 물건 중에는 제법 값이 나갈 것 같은 '디즈니 보드게임'도 섞여 있었다.

"보드게임은 10년 전 런던 벼룩시장에서 샀던 거예요."

이씨가 무역업에 종사하는 덕에 건호 가족은 1997년부터 99년까지 2년간 영국의 웨일스와 런던에 살았다. 이씨 가족은 위아자 나눔장터 같은 벼룩시장을 그때부터 경험했다. 당시에 건호는 유모차를 타고 벼룩시장을 다녔다.

"런던 벼룩시장에는 속옷이며 아기 젖꼭지까지 없는 게 없더라고요. 거기에 비하면 한국에선 멀쩡한 물건을 쉽게 버리는 것 같아요."

이런 경험 때문에 건호 가족은 매년 빠지지 않고 위아자 나눔장터에 나오고 있다. 엄마 주혜경(43)씨는 "이제는 집에서 버릴 물건이 생길 때마다 '혹시 위아자 장터에서 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장터에는 혜경씨 조카인 함나현(여.일산동중 2년).현석(상탄초등 6년) 남매도 동참했다. 지난해에는 건호군의 친구들이 함께 나왔다. 건호 가족은 나눔장터의 의미를 함께하자는 취지에서 항상 친구나 친척을 데리고 나온다고 한다.

아빠 화진씨는 이날 중요한 약속 때문에 먼저 장터를 떠났다. 그 대신 장터를 한 바퀴 돌고서 건호와 아내를 위한 선물을 챙겼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CD와 한국 가요 CD였다.

건호 가족은 3년째 '판매 수입의 50%는 기부한다'는 위아자 나눔장터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처음에는 수입금의 절반을 내놓는 게 솔직히 아까워했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해요."

건호 가족이 3년 동안 위아자 장터에 내놓은 기부금은 20만원에 이른다. 건호 가족은 이날 미처 팔지 못하고 남은 옷가지 10여 점도 함께 기부했다.

디즈니 보드게임은 '장난감 수집이 취미'라는 30대 후반의 한 남성에게 2000원에 팔렸다. 런던 벼룩시장에 나왔던 물건이 건호 가족의 손을 거쳐 위아자 나눔장터에서 한국의 장난감 수집가 손에 건네진 것이다.

성시윤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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