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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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29) 명국은 방안을메우고 있는 어둠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으로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오늘이 며칠인가.달빛이 흐릿하게 걸려 있다.
생자필멸이라던가.태어난 건 다 때가 되면 죽게 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어디 사람만 그렇던가.풀도 나무도 짐승도 그건 마찬가지다.산 목숨 가지고 있을 때는 잘났네 고개를 뻗대지만 그게 얼마던가.여름 지나면 풀도 시들고,나이 차면 짐승 도 집 나가서 죽는게 아니던가.
명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같은 게 그 깊은 뜻이야 알리도 없다만 그래도 영영 헤어진피붙이 생각을 하는데 가슴이 찢어지지 않아서야 사람도 아니지.
어린 녀석이 나하고는 달랐지.그래서 부모님들도 이따금 생각하며그애를 아까워했고.
글을 읽으라고 보내면 서당 훈장이 밑에 두고 싶어했고,거간들따라 장사시중을 나가면 서로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고 하던 아이가 아니었던가.재주 많다고 하늘이 시샘을 했을 까닭도 없는데 집안에 그중 낫던 아이가 일찍 갔으니.나야 그 아이에다 대면 껍데기지 껍데기야.
그나저나 그애가 왜 갑자기 꿈에 보였던 걸까.명국은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꿈속에서 동생은 이따금 같은 모습을 했다.강가를 걷고 있곤 했다.걷는 모습도,뒤를 돌아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길 갈라 주는 굿이라도 해야 했던 건데.물에 빠져 죽은 아이라 제 형의 꿈에서도 강가를 떠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명국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는 이리저리 몸을 뒤치며 자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서 창가로 다가갔다.밖에 바람이 부는가.목조건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어둠 저편에서 들려왔다. 그나저나 마음이 이렇게 뒤숭숭해서야 어떻게 길남이와 일을 도모하나.명국은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이제 더 늦출 일이 아니라는 데에는 그도 생각이 같았다.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라면 더 늦출 것도 없이 서둘러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싶어,마음을 굳히고 있던 길이 아니었던가.보름이 지났으니까… 며칠만 더 기다려서 캄캄한 그믐밤에 바다를 건너기로하자고 혼자는 이미 마음속에 다짐을 하고 있던 명국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꿨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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