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불 해저터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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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세기 영국작가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인 『두 도시 이야기』에서 두 도시란 런던과 파리를 가리킨다. 디킨스의 유일한 역사소설인 이 작품은 두 도시를 무대로 영­불 두나라 젊은이들의 사랑과 고뇌,그리고 갈등이 절절하게 묘사된다. 의사 마네트는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유폐됐다가 석방된후 런던으로 건너가 차츰 심신의 건강을 되찾는다. 그의 딸 루시를 사랑하던 프랑스 귀족청년이 런던까지 따라와 이들 남녀는 결혼하는데,자신의 충직한 머슴이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구하러 본국으로 갔다가 오히려 혁명정부로부터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루시를 사랑하던 한 영국청년이 그를 구해내고 대신 희생된다는 줄거리다.
영­불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미묘하지만 이 소설 하나만으로 화해의 무드를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거리상으로는 가까운데도 중간에 도버해협이 가로놓여 있어 멀게만 느껴지던 두나라 사이에 직통 해저터널을 설치하는 일은 나폴레옹시대 때부터의 과제였다.
그러나 막상 구체적 실천단계에 들어서면 두 나라의 이기주의와 이해관계가 맞물려 번번이 좌절되곤 했다. 배나 비행기로 두나라를 오가는 사람들은 연간 2천만명이 훨씬 넘지만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득실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영­불 수뇌회담에서 양쪽이 현안들에 대해 한걸음씩 양보,해저터널 건설에 최종합의를 본 것은 86년 2월이었다. 이듬해 착공해 93년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공기가 1년 늦어져 마침내 6일 개통하기에 이르렀다.
공사비로 당초 예상한 70억달러보다 두배가 넘는 1백57억달러가 들었으나 해협열차 「유로스타」로 35분이면 상대 나라에 닿을 수 있게 됐으니 두 나라는 이제 아주 가까운 이웃나라가 된 셈이다. 내년부터는 매년 3천만명의 승객들이 이 해저터널을 이용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해저터널 건설에 참여한 주주가 무려 4백50만명에 달할뿐 아니라 재정면에서는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승객이 아무리 밀려도 상당기간 적자를 메울 길이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두 도시 이야기』처럼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간애를 쌓는 일만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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