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좋은 땅 쪼개 파는데 사시죠" 이런 전화 받으신 분 많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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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둔 H영림조합은 요즘 매매계약서 작성 5년 뒤 투자금 대비 100%의 배당 수익금을 주는 조건으로 땅을 쪼개 판다. 자신들이 분양 중인 경기도 여주 임야에 투자하면 부지 내에서 재배한 자작나무·주목 등을 팔아 수익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 업체의 분양 담당 직원은 “회사 보유 필지 중 최종 마감분을 싸게 한정 판매하고 있다”며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오는 11월 ‘부동산개발업의 관리 및 육성에 관한 법률(부동산개발업법)’의 시행을 앞두고 한동안 뜸했던 기획부동산업체의 땅 ‘쪼개 팔기’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기획부동산은 인터넷·텔레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은 뒤 큰 땅을 여러 필지로 쪼개 파는 업체다.

 이 법이 시행되면 부지면적 3000㎡ 이상의 땅 분양업체는 5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추고 사무실 소재지 시·도에 정식 등록해야 한다. 허위 개발정보를 퍼뜨리며 전화 등을 통해 땅을 강매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법 시행 이전에 땅을 처분하려는 기획부동산업체들은 다양한 편법을 동원해 막바지 땅 쪼개 팔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 투자자들은 주의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갈수록 수법 교묘해져=경기도 여주 산북면에서 임야 17만㎡를 팔고 있는 W산림영림조합은 이름만 애스크로 계좌(Escrow·특별관리 계좌)를 내세워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애스크로 제도는 분양 대금 등을 은행·변호사 등 제3자 명의의 계좌에 맡겨 안전성을 높이는 거래 방식이다. 미국 등지서 보편화됐지만 국내에는 아직 본격 도입되지 않았다.

 이 업체의 경우 법무사 명의로 은행에 애스크로 계좌를 개설해 땅 등기이전이 완료될 때까지 분양대금을 관리해 준다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하지만 확인 결과 해당 은행에서는 부동산 관련 애스크로 서비스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애스크로 계좌는 은행과 별도 특약사항을 맺어 예금주 마음대로 돈을 빼 쓸 수 없도록 한다”며 “안전장치가 없는 개인 명의의 계좌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급한 기획부동산업체들은 ‘토지분할허가제’도 무시하며 땅 팔기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투기를 막기 위해 비도시지역(관리지역·농림지역 등)의 땅 분할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지자체는 실수요가 아니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경기도 이천의 임야 2만3000㎡를 쪼개 파는 H농림조합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책임 분할등기’를 내세운다. 잔금을 완납하면 지자체에 부동산거래 신고필증 등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법무사가 땅 분할을 모두 책임져 준다는 조건이다. 이 업체는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법무사 명의의 ‘분할등기 책임보증서’까지 발급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천시 개발민원과 관계자는 “한꺼번에 수십 필지씩 신청하면 대부분 허가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타운하우스가 인기를 끌자 이에 편승해 땅을 파는 업체도 등장했다. 지난해부터 경기도 가평에서 ‘전원주택용 부지’로 땅만 쪼개 팔던 N개발은 얼마 전 ‘타운하우스 단지’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땅을 팔기가 어렵게 되자 슬그머니 이름만 바꾼 것이다.

 막판 ‘떨이 분양’도 늘고 있다. 경기도 가평에서 임야를 파는 U개발은 최근 분양가를 ㎡당 7만원으로 낮췄다. 이전에는 ㎡당 12만원에 팔았으나 분양실적이 저조하자 일시불에 한해 땅값을 깎아 주고 있다.

 기획부동산업체의 막바지 땅 쪼개 팔기가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깔세(선월세)’ 사무실 임대업도 성업 중이다. 전직 기획부동산업체 대표인 이모(53)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강남 사무실을 다른 기획부동산 업체에 임대해 주고 있다. 전화기·책상 등을 모두 갖춘 이 사무실(231㎡)의 한 달 월세는 2000만원이다. 그는 “영업난으로 분양 사무실을 처분하는 대신 다른 업체에 임대를 주는 곳이 많다”며 “3∼4개월 동안 영업하고 떠나려는 뜨내기들을 대상으로 임대가 잘된다”고 말했다.

 ◆낭패 피하려면 주의해야=편·탈법 토지거래 행위는 위험 부담이 커 투자자들은 유의해야 한다. 특히 공유지분 형태로 쪼개 파는 땅은 나중에 분할이 어려워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또 업체 말만 믿지 말고 현장 방문과 함께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개발계획 등을 확인해봐야 한다.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산림·영림조합’ 등의 상호를 쓰는 업체 가운데 현지 농민과는 관계없는 기획부동산업체인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강화로 사실상 땅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가급적 기획부동산업체들의 땅 매입 권유에는 응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다산서비스 이종창 대표는 “부동산개발업법 시행을 앞두고 이를 피하려는 업체들의 땅 분양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땅 투자 체크포인트
■‘회사보유 필지 최종 마감분’ 등의 문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11월 이후 분양하는 땅은 정식 등록업체인지 꼭 확인해 봐야
■분할신청 부지 내 도로 개설계획 있으면 분할 허가 어려워
■영업을 시작한 지 1년 미만인 땅 분양업체는 가급적 피해야
■소송 통한 분할은 땅주인 간 다툼 있으면 경매처분될 수 있어

부동산개발업법이란
■제정 목적 : 기획부동산업체 등 개발업체의 난립 방지
■주요 내용 : 연면적 2000㎡(연간 5000㎡) 이상 건축물, 부지면적 3000㎡(연간 1만㎡) 이상 토지 등 개발업체 등록 의무화. 전화 등 통해 허위개발계획 유포하고 땅 파는 업체 형사처벌
■등록 요건 : 자본금 5억원(개인은 10억원), 감정평가사·공인중개사 등 전문인력 3인 이상
■시행일 : 2007년 11월 18일

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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