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체감경기를 살리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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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러나 이러한 생산과 투자에서의 회복세와는 달리 실제로 우리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와 거리가 있다. 많은 국민은 아직도 이러한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지표상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되살아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소비가 늘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늘어나지 않음으로 인해 도·소매업 매출이 증가하지 않게 되고, 국민은 실제 경기가 회복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체감경기 회복의 관건인 국내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먼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소비는 소득이 높아지면 늘어나게 돼 있다. 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한 경우는 소득이 높아져도 소비가 늘어나지 않게 된다. 소비자들은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많은 임금노동자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선진국과 달리 연금제도가 확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고령화 사회를 맞고 있다. 여기에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조기 퇴직이 일반화돼 있다. 많은 직장인이 50세 이전에 조기 퇴직을 당할 것을 염려해 지금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지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소득은 늘어났지만 소비증가율은 둔화하고 있고 대신 저축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도·소매업의 매출 역시 다른 업종에 비해 그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다.

 소비가 되살아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늘어난 실업과 소득의 양극화 때문이다. 기업투자가 부진해지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자 빈곤층이 늘어나면서 중산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은 소득이 없어 소비를 늘리지 못하는 반면 고소득층은 해외소비만 늘리지 국내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결국 국내소비를 늘릴 수 있는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우리 소비가 늘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계부채가 600조원에 근접하면서 사상 최대로 늘어나고 있고 신용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최근의 한국은행 통계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최근 우리 소비부진과 이로 인해 체감경기가 되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좀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장률은 높아져도 체감경기가 되살아나지 않는 구조 속에 우리 경제가 들어가 있고,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체감경기를 살리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국내소비를 늘릴 수 있는 중산층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 투자환경을 개선해 국내투자가 늘어나게 만들어 더 많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 중산층을 늘려야 국내소비가 증가해 체감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은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 역시 이에 협력해 지금과 같이 50대 이전에 퇴직하는 조기퇴직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퇴직 연령을 과거와 같이 50대 후반으로 늦추어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 주어야 소비가 다시 늘어난다. 그래야 우리의 체감경기도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