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처럼 적중한 리안 감독 94년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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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활동무대에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당찬 신예 감독 1994년 한국에 왔던 리안 감독…그때도 강한 '예술 야망' 보여 대만 출신인 리안(李安) 감독의 영화 혼이 갈수록 무르익는 듯 합니다. 8일 끝난 제6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욕망, 신중(Lust, Caution)'으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더군요. 2년 전인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래 2년 만에 두번째입니다.

과거 중국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귀주 이야기'(1992)와 '책상설합 속의 동화'(99)로 두 차례 받은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이 상을 두 차례 받은 기록은 아직 없는 걸로 압니다. 리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3년 사이에 황금사자상을 두번째 받는 것은 마치 영화처럼 나를 놀라게하는 격정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리 감독은 사실 저를 영화처럼 아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1994년 그를 인터뷰할 때 들은 말 하나하나가 예언처럼 적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대만 감독으로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서양 영화를 찍을 예정이라고 했는데 그게 '센스 앤드 센서빌리티'지요. 나중에 나온 '브로크백 마운틴'도 이런 류에 해당하겠지요. 그는 당시 "몇 년 뒤 무협영화를 만들 계획이 있다"고 말했는데 최우수 외국어 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4개 부분에서 수상했던 '와호장룡'(제작 2000)이 그것입니다.

중국·대만·홍콩의 3개의 중국이 힘을 합쳐 할리우드에 대항하거나 아예 진출해 영화의 국제화를 모색한다는 말도 했는데, 흡사 지금 그가 거두고 있는 성공을 미리 예언한 듯 합니다. 그의 삶은 아주 오래 전에 계획된 걸 흐트리지 않고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오래 전의 희망을 결코 잊지 않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겠지요. 94년 인터뷰는 충무로에서 했습니다. 수입업자와의 식사 자리가 끝난 뒤 종업원들이 자리를 치우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뤄진 걸로 기억을 합니다.

9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았던 '결혼 피로연'의 감독을 본다는 생각, 그 당시 한창 뜨고 있던 중화권 영화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가능한 감독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 만났습니다. 그는 아주 조용하고 진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친절했습니다. 겸손함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그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것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다음은 1994년 10월29일자 중앙일보 45면에 난 리안 감독 인터뷰입니다 대만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국제적으로도 대단한 명성을 얻고 있는 리안(李安)감독이 자신의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의 한국개봉에 맞춰 내한했다. 뉴웨이브파란 이름으로 종래의 진부한 영화를 넘어선 신선하고 독특한 영화로 국제적으로 대만영화의 위상을 크게 올리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경력은.

-대만출신으로 미국 뉴욕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뒤 미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동성연애자 아들이 아버지를 만족시키기 위해 결혼하는 것처럼 꾸미는 내용의 『결혼피로연』을 만들었다. '음식남녀'는 대만서 만든 첫 영화다.

▲자기 영화 스타일이 있다면.

-유머를 좋아해 영화 속에 많이 반영하고 있다. 단순히 한번 웃고 넘어가는 것보다 유머 속에 삶을 뒤돌아보고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기법을 주로 쓰고 있다.거기에 가족간의 정이라는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웃음과 가족은 만국 공통언어이지 않은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우선 올 겨울 미국에서 영국의 19세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 스태프와 배우중 대만인은 나 뿐이다.대만출신 감독으로 서양영화를 찍는 것이다. 내년께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을 생각도 있고 몇 년 후에는 무협영화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넓은활동무대를 가지고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최근 중국계 영화들의 국제적으로 대단한 기세로 상승무드를 타고 있고 이에따라 대만.중국.홍콩의 영화합작도 활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홍콩영화는 최근 침체기지만 고전적 경향의 중국영화가 국제적으로 큰 명성을 얻었으며 현대적 분위기의 대만영화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들어 비용문제 때문에 물가가 싼 본토촬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3개의 중국이 힘을 합쳐 할리우드영화에 대항하거나 아예 할리우드로 진출해 영화 국제화를 도모하는 단계에 와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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