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총리의 인준안 처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회서 “반대” 부딪히면 통과돼도 정치적 부담/모두 6차례 “파란”… 62년 개헌땐 동의요건 삭제도
이영덕총리 내정자에 대해 민주당이 국회인준을 반대하고 나서 25일 국회 본회의에서의 표결결과가 주목된다.
물론 집권당인 민자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국회에서 이 내정자의 인준이 부결될 가능성은 적으나 인준이 되더라도 대통령이나 새 총리는 한쪽 정치세력의 반대를 받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이같은 사실은 역대총리들의 국회인준역사가 말해준다.
국무총리 국회동의 과정에서 한쪽 정치세력에 의해 파란이 일기는 모두 여섯번이다. 첫 총리내정자였던 조선 민주당출신 이윤영씨가 다수당이던 한민당 반발로 부결돼 이범석씨에게 초대총리자리를 넘겨주었다.
이승만대통령은 50년 다시 이윤영씨를 총리에 지명하고 국회동의를 시도했으나 쓴맛을 봤고 52년말에도 재차 동의안을 제출했으나 부결돼 「3전 전패」를 기록했다.
이씨는 52년 4월 전쟁와중에 서리를 지냈으나 결국 2주일만에 물러났다. 후임은 장택상씨였다.
이밖에 50년 백낙준씨,52년 이갑성씨,60년 민의원시절 김도연씨 역시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해 밀려났다.
5·16 쿠데타정권은 62년 5차 개헌때 총리의 국회동의 요건을 삭제했다. 정일권총리가 역대 최장수 재임기간(64년 5월∼70년 12월)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도 작용했다.
72년 유신헌법에 국회동의가 부활된 이래 지금까지 여당이 줄곧 안정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동의안이 부결처리된 적은 없다.
그러나 동의안처리는 야당이 불참 또는 반대를 통해 현안에 대한 정권의 자세에 항변하는 표시로 이용돼 왔다. 6공당시 노재봉총리(91년)는 「광주사태가 김대중씨의 외곽을 때리는 수법으로 발생했다」는 과거 발언으로,정원식총리(91년)는 「전교조 탄압인물」이라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들은 인준을 받은 후에도 인준당시의 이미지로 끊임없는 시달림을 받았고 노 전 총리는 결국 「공안정국」 시비로 단명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야당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케이스도 없지 않다. 6공말 노태우대통령의 탈당선언으로 조성된 중립내각의 현승종총리가 그 대표적인 인물. 당시 참석의원 2백77명중 2백66명이 찬성,여야 모두 전폭적인 환영의 뜻을 보였다.
이번에 물러난 이회창총리도 지난해 12월 국회동의안 처리시 2백60명의 참석의원중 2백20명이 찬성하는 투표로 인준되었다.
이 총리 내정자에 대한 국회인준은 그가 보수적이라는 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그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개혁적인 이회창 전 총리를 경질했다는 이유로 야당이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총리내정자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모양새가 이상하게 되었고 헌정사상 전임자 때문에 곤욕을 겪는 첫 케이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김진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