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최초 테러리스트는 디오니소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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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성스러운 테러
테리 이글턴 지음
서정은 옮김, 생각의 나무
248쪽, 1만2000원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품게 된 테러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이라면 이 책 말고 다른 걸 고르는 게 낫다. 여간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이 없는 독자라면 10분을 못 버티고 책을 던져 버릴 게 분명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미리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수많은 테러리즘 연구에 한 항목을 보태기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테러라는 개념을 “형이상학적이라 부를 수 있는 맥락에 위치시키려는 시도”다.

 그런 눈으로 봐야 우선 『성스러운 테러』라는 제목에 반감을 버릴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신이자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최초의 테러리스트 지도자”로 언급하는 저자의 도발적 글쓰기는 서구 문명사를 구성하는 신화와 문학, 철학, 심리학, 정치학을 아우르고 고대와 현대의 시간적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며 테러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시도한다.

 디오니소스의 예가 암시하듯 저자에게 테러는 이성과 광기의 양가성(兩價性) 개념이다. 디오니소스와 신도들의 광적 주신제(酒神祭)를 폭력으로 제압하려 했던 이성적인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결국 파멸하고 만다. “광기를 인정하는 것이 정신의 명료함인 반면 광기를 이성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망상일 뿐”인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문명과 야만이 오랜 적대자인 동시에 가까운 이웃”이었으며 “인류가 문명 진화와 함께 야만을 휘두를 세련된 기술을 발전시켜왔음”을 본다. 테러는 결국 인간 자신에 내재한 폭력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테러를 막으려면 인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쉬운데 여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해석의 자의성은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시사적 의미로 테러의 역사가 궁금한 독자보다는 테러라는 주제로 호사스런 문학적 유희를 만끽할 준비가 돼있는 독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화려한 언어의 향연 속에서 머리에 쥐가 났을 게 분명한 번역자의 고통을 은근히 즐기는 악취미를 가진 독자라면 더욱 그렇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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