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혈증 치료 길이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대표적 난치병으로 알려진 패혈증(敗血症) 치료가 앞당겨지고 있다.

신호탄은 2001년 패혈증 치료제로는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의 공인을 받은 자이그리스. 미국의 제약회사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자이그리스는 활성형 C단백질의 일종으로 패혈증에서 나타나는 치명적인 혈관내 염증과 혈액의 응고를 방지한다. 임상시험 결과 13%에서 패혈증 사망률을 낮추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87%에선 기대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백약이 무효였던 패혈증에 대해 인류가 처음으로 '무기'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 한림대의대 천연의약연구소 송동근.허성오 교수와 바이오벤처인 바이오시너젠이 공동개발한 패혈증 치료물질 라이소포스파티딜콜린도 주목을 받고 있다. 과학기술부 프런티어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된 이 물질은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 결과 효과적으로 패혈증을 억제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의학잡지 네이처메디신 최신호에 게재됐다. 아직 동물실험 결과지만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은 새로운 기전으로 치료효과가 입증됨으로써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패혈증은 한자어로 피가 썩는다는 의미다. 세균이 혈액을 통해 전신에 퍼지면서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에 의해 고열과 오한, 심장박동의 저하, 혼수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일단 증세가 나타나면 사망률이 30~50%에 이른다. 세균에 오염된 어패류를 먹다 생기는 비브리오 패혈증 등 원인은 다양하나 공통분모는 중환자실 입원환자나 만성질환자 등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사람을 주된 공격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이 경우 피부에 난 종기처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 세균이 전신으로 퍼져 패혈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에서만 해마다 20만여명이 패혈증으로 숨진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패혈증 희생자는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찾아온 친구를 위해 장미꽃을 꺾다 가시에 찔려 1926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패혈증 예방을 위해선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경우 세균이 침투하지 않도록 위생관리에 철저해야 하며 고열 등 감염 조짐이 보이면 패혈증으로 악화하기 전 신속하게 항생제를 투여해야 한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