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환위기 이후 10년] "노사 갈등 심해져 경제 성장기반 약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한국사회학회와 중앙일보는 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IMF 체제의 사회분화를 넘어서 통합사회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왼쪽부터 이성균 울산대 교수,이병훈 중앙대 교수, 조은 동국대 교수,신광영 중앙대 교수. [사진=박종근 기자]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기업구조조정, 시장 개방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겪었다. 또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사회 계급과 가족 구조가 바뀌었고 대량 실업, 비정규직, 고령화, 출산율 저하 등으로 사회적 양극화도 심해졌다. 한국사회학회(회장 전태국)와 중앙일보는 4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IMF 체제의 사회 분화를 넘어서 통합사회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선 5개 분야 전문가들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겪은 변화를 분석하고 정책 처방을 제시했다. [편집자]

노동 부문> 정규직 전환 기업에 세제혜택 등 필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사 갈등이 증폭됐으며, 막강한 힘을 가진>산별노조가 등장했으며 노동시장도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사관계의 변화’라는 주제발표에서 노동시장 양극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노사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로 인해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의 폭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우리 경제의 성장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 원인을 ‘신자유주의적 성장 정책’에서 찾았다. 그는 이 정책이 대기업의 독식 경영 체제와 기업의 노사 담합을 조장해 노동 양극화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 양극화와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담론을 대신할 대안적 정책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대안으로 ‘사회적 노동시장 체제(social labor market system)’를 제안했다. 취업 등을 근로자에게 전적으로 맡겨 두는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보다는 노사를 비롯해 정부·시민단체 등이 취업·직업교육 등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유럽식 모델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효율적으로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또 “대기업들이 수익을 독차지하기보다는 중소기업들과 이익을 나누는 경영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우선 대기업과 하청업체들 간의 공정한 거래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비정규직 고용 남발과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다. 셋째, 간접 고용된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원청·사용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 기간제 근로의 남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넷째, 중소 사업장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사회보험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기 위해 근로감독 행정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교수는 “중소기업들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를 막고 정규직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세제와 고용보험 혜택 등 정책적 인센티브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대기업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이 교수는 “대기업 노조들이 직무 안정성(job security)을 고수하려는 기존의 경직된 입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산별 노조의 등장에 맞춰 산업별로 공동 임금·고용·복지 체계를 확립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현행 연공형 임금 체계를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기반으로 한 직무급 체계로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고용·복지센터의 활성화도 강조했다. 산업 또는 지역 특성에 적합한 직업 훈련·취업 알선·실업자 생계지원·생활 상담 등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센터는 노사 공동기금과 정부 지원으로 설립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에도 다양한 주문을 했다. 우선 신성장 사업분야 육성을 지원하는 산업정책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단축과 교대 근무제 개편에 대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끝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언론·시민단체들의 독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득 부문>개인 아닌 가구당 빈부차에 정책 맞춰야

이성균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가구 소득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그 원인을 가구 구성원들의 근로소득 외에도 부동산·금융 자산 등 재산소득의 격차가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동시장뿐 아니라 금융시장 등을 통한 소득 격차가 우리 사회의 소득 불균형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가구소득 불평등과 직업구조:도시 임금 소득자 가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발표에서 “가구소득 불평등은 가구주와 배우자의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가구주와 배우자의 직업에 따라 가구별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가구주의 학력·임금이 높을수록 배우자도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교수는 또 “전문직·경영관리직 종사자와 단순 노무자의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앞으로 가구 소득의 불평등구조가 고착되고 이를 대물림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는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불평등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고소득 가구의 경우 구성원들이 윤택한 문화·여가 생활을 누리면서 자녀의 교육에도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반면 저소득 가구는 절대 소득이 적기 때문에 가계 수지에서 적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는 가구총소득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가구주가 저소득 직종에 종사하더라도 다른 가족이 일정 소득 이상을 받는 직종에 취업한다면 그 가정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가구 구성원의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산층 확대를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산층도 주택 마련의 어려움과 사교육비 부담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어렵다”며 “주택·교육·의료 등 가구 단위의 집합적 소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시장과 공공제도를 통해 소득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주요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소득 불평등 정도는 정부 정책에 따라 제각기 다르다”며 “각국이 각기 다른 소득 재분배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득 재분배 제도와 관련,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발생한 저소득 가구의 빈곤과 중하위 소득 계층의 경제적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의 개선뿐 아니라 조세제도나 복지제도를 통해 소득을 적극적으로 재분배해 이들의 가처분 소득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연세대 사회학과 한준 교수는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여성의 경제활동이 가구 소득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하는 기혼 여성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근로소득 외에 금융·부동산 자산으로 인해 가구별 소득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재산소득의 경우 사업주나 자영업자, 불로 소득자들에게 집중돼 있기에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덧붙였다.

글=최익재 기자ijchoi@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