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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광고 사전 심의해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TV광고를 사전심의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무차별로 안방까지 전달되는 사태를 미리 막기 위한 법적장치다. 그런데 이 장치가 미국쪽 압력으로 폐지되거나 수정될 위험에 처해있다. 정부가 미국 무역대표부의 요구를 받아들여 관세 법령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사전심의가 사후심의,또는 완성품 아닌 줄거리(Story Board) 심의만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비록 방송위가 현행 사전심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행정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법적장치가 바뀐다면 방송위의 원칙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자율이란 측면에서만 본다면 사전심의제란 결코 바람직한 장치는 아니다. 광고 제작자들이 자율적 양식과 기준에 따라 심의해 광고물을 제작하는게 가장 소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신문이나 출판물 광고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옷벗기기 광고물 제작이 유행처럼 되고 있다. 특히 여성지의 경우 이미 상당량의 외국광고물이 벌거벗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TV의 경우는 그 파급도나 영향력이 신문·출판물과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사전 심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장치가 사라지거나 줄거리 심사로 대충 넘어갈 경우 안방까지 미칠 외국 광고물의 폭력성과 선정도는 막을 길이 없게 된다. 줄거리 심사란 어디까지나 줄거리일뿐 폭력과 벗기기의 정도를 심의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쪽에서는 완성품의 사전심의는 아이디어를 노출시킬 염려가 있고,심의이후 변경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아이디어를 담는게 바로 스토리 보드이고 보면 줄거리 심의만으로 광고 아이디어는 충분히 노출되게 마련이다. 10초짜리 광고물 제작이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대체 필름은 보통 충분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주장도 별로 현실성이 없다.
TV광고에 대한 미국쪽 요구는 심의라는 단순한 측면만 있는게 아니다. 광고물의 제작과 대행사 기능,그리고 요금과 광고시간대 책정에 따른 광고시장 전반에 대한 요구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곧 광고시장 점유를 둘러싼 사전 포석이라 볼 수 있다. 이미 완전개방에 가까운 광고시장에서 외국광고회사가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기 위해 국내법을 바꾸고 남의 나라 미풍양속과 문화·관습,그리고 청소년 보호정책까지 무시하려든다면 이는 지나친 월권이요 내정간섭이다.
따라서 정부는 방송심의라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게 아니라 보다 큰 국익차원에서,건전한 자국문화 보호라는 차원에서 확신에 찬 대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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