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자리 내놓은 한목은씨 "회사 살려놓고 떠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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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회사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지요. 하지만 협력업체는 그들의 파업으로 사상 최악의 해를 보냈습니다."

지난해 7월 말 현대.기아차 노조 파업으로 협력업체로는 첫 부도를 맞았던 ㈜경원하이텍의 한목은(韓牧殷.42.사진)전 사장. '죄인'이라며 인터뷰를 꺼리다 지난 19일 광주 하남공단에서 기자와 만나 지난 6개월간의 악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설 연휴를 앞둔 이날 그는 종업원들에게 줄 선물(포장김)을 먼저 보여주었다. "떡값을 고민하자 직원들이 회사 정상화가 더 큰 선물이라며 위로하잖아요. 눈물이 핑 돌았죠.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3만원짜리 김 선물을 장만했어요."

경원하이텍은 자동차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30일 부도가 났다. 차체 패널.섀시 등을 기아차(80%)와 현대차(10%) 등에 공급하다 납품이 끊기면서 일순 자금난에 빠진 것. 1백30여명의 직원으로 2002년 매출 1백27억원을 기록했고, 5월까지도 월 10억원씩 매출을 올렸던 건실한 중소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청천벽력처럼 앞이 캄캄하면서 억울했다"고 기억하던 그는 "대기업 파업은 중소 협력업체엔 직격탄"이라며 '우연히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처음엔 남들처럼 자살하거나 도망가려 했다"며 "하지만 직원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회사를 살리는 게 경영자의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원하이텍은 지난해 말 한스코리아로 이름을 바꾸었고, 채권단이 보낸 새 사장이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했다. 부도업체 사장은 잠적.도피하는 게 다반사다. 韓사장은 그러나 잔류를 자청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런 그를 채권단은 부사장으로 앉혔다. 그는 부도 이후에도 매일 오전 6시40분 출근, 야간작업이 끝나는 오후 9시 이후에나 퇴근한다. 채권단은 이 회사를 오는 3월까지 제3자에게 팔 계획이다.

그는 "회사를 되찾을 욕심은 없다"며 "직원들 일자리를 보장받는 대신 경영권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런 모습에 韓전사장이 부도 기업인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마다 채권단과 직원들이 앞장서 탄원서를 냈다.

부도 직후 생산라인이 텅 비고, 공장 문이 굳게 닫혔던 회사가 요즘엔 원자재가 쌓이고, 밤 늦게까지 육중한 프레스(압축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공장가동률이 60% 이상으로 올라섰고, 부도어음도 대부분 회수됐다. 한 두달씩 밀렸던 임금이나 은행 이자, 4대 보험, 세금도 거의 해결됐다.

현장 근로자인 金모(40)씨는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韓전사장은 올해 협력업체들이 더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총선이 있는 데다 대기업 노사관계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집회 소식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협력업체들은 한해의 경영전략을 짤 때 원청업체의 파업이 최대 관심사예요. 환율이나 내수경기는 파업에 비하면 경영 변수로서 의미가 없을 정도죠."

韓전사장은 다음달 광주대를 입학한 지 20년 만에 졸업을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그는 1984년 광주대에 입학했으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동차 정비공장 일을 하느라 2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93년 회사 전신인 신흥대산에 현장근로자로 입사했다. 97년 외환위기 때 회사가 부도를 맞자 그는 종업원 대표로 공장운영에 참여한 뒤 2001년 종업원 지주회사의 경영자가 됐다. 광주대에는 2002년 복학했다. 그는 "회사가 정상화되면 미련없이 떠나겠다"며 "살려고 몸부림치는 협력업체들을 위해 올해는 대기업 노사가 파업이란 극단적인 상황은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이원호.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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