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세 중요성도 몰랐다니…/박영수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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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일 국회 농림수산위에 나온 김양배 농림수산부장관이 밝힌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전말」을 곰곰 뜯어보면 정부의 대외협상력에 깊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김 장관의 보고에 따르면 국영무역과 종량세 부과 대상품목이 결과적으로도 축소됨으로써 우리 농산물시장을 더 개방하게 됐다. 이 대목을 잘만 이용하면 거센 개방파도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종량세는 수입물량이 늘어남에 따라 세금도 중과되는 것이므로 무차별 수입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는 당초 요구보다 축소되었지만 많은 품목들이 국영무역과 종량세의 적용을 받는다는 논리를 폈다. 정부가 앵무새처럼 외고 있는 「1백30개를 달성하려다 1백10개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설명이 바로 이 대목이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이 부분의 중요성을 처음에는 몰랐다고 말했다. 1월말에야 이 부분이 UR 협정문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대통령과 총리에게 보고한 때는 그로부터 2주정도 지난 2월14일의 대외협력위 회의 때였다고 밝혔다.
당시 야당측에서까지 이 부분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고 있었는데도 주무장관은 「중요성을 몰랐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통령과 총리가 이 내용을 보고받기전인 2월4일 민주당의 UR대책위원회 홍영기의원 등이 이회창총리를 찾아 이 내용을 적시한바 있다.
농림수산부의 실무자들은 이같은 내용을 진작부터 깨닫고 있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황인성 전 총리도 지난해 12월15일 국회 답변에서 『NTC 개방품목들은 국영무역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영무역으로 수입농산물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허신행 전 장관이라고 이를 몰랐을리 없다.
유독 김 장관만 모르고 있다가 농림수산부의 업무를 숙지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장관은 UR타결과 허 전 장관이 물러난뒤인 지난해 12월22일 취임한 것이다. 장관이 바뀌니 농림수산부의 실무자들은 새로운 장관이 업무를 숙지하는데 신경을 기울였을 것이다. 당연히 UR부문은 장관의 업무파악 뒤로 늦춰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국영무역같은 중요한 대외정책들이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UR를 전담하는 전문협상팀의 부재와 장관의 통솔에만 의존하는 대외협상 방식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또다시 장관이 바뀌면 똑같은 경과를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한 우려가 없도록 국제협상력의 제고와 함께 전문적인 대외협상팀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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