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와 할머니의 엉뚱 납치극-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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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14면

임신한 아내가 교도소에 있는 도범(강성진)은 그녀를 보석으로 석방시키기 위해 유명한 국밥집 주인 권순분 여사(나문희)를 납치하기로 한다. 우즈베키스탄에 맞선을 보러 가려다가 사기를 당한 친구 근영(유해진)과 잘생겼지만 멍청한 처남 종만(유건)이 그의 일당. 세 남자는 우여곡절 끝에 권순분을 납치하는 데 성공하지만 난관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권순분의 이기적인 자식들이 어머니 피랍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참다 못한 권순분은 세 남자를 대신해 협박용 테이프 제작부터 몸값 회수 작전에 이르기까지 몸소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지휘한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등을 연출한 김상진 감독이 3년 만에 만든 코미디 영화다. 9월 13일에 개봉하는 이 영화만큼 추석에 어울리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맨손으로 자식을 키우고 부를 이룬 데다 자선활동에도 열심인 할머니, 제각기 약점이 있어 코미디 앙상블을 이루기에 제격인 납치범들, 흉악한 납치 사건이 좌충우돌 난장판이 되었다가 훈훈한 미담으로 마무리되는 드라마. 제각기 떼어놓으면, 혹은 잘만 모아놓으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요소들이다. 게다가 가속도가 붙은 열차에서 진행되는, 처절한 액션과 정교한 설계가 한데 어우러진 몸값 회수 작전은,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후반에 규모와 긴장을 더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는 법이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재미있는 장면들은 있지만 영화 전체와는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납치범들이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지 않고 샛길을 기웃대는 탓이다. 키와 체격이 성인 남자의 1.5배는 되지만 스타일과 목소리만은 고운 거인 처녀라든지, 19대1의 전적을 자랑하는 전설적인 경찰서장 같은 조연들도, 서표처럼 영화에 삽입되었다가 빠지기를 반복할 뿐이다. ‘신라의 달밤’처럼 에너지 있게 달려갔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소박하고 날렵한 외양을 지닌 듯했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의외로 자잘한 장식이 많아 한군데 신경을 쏟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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