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피플] “고전이나 양서 싼 가격에 공급 한국판 ‘끄세주 문고’ 만들어야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죠. 알려지지 않은 탓에 집필을 거절하는 필자들도 있었고, 권 당 이윤이 적으니까 서점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고….”

 4년 만에 『박정희』를 포함한 ‘경제를 일으킨 국가지도자’ 특집 7권으로 300호를 넘겨 이제 한국 출판계의 대표적 문고로 자리잡은 ‘살림 지식총서’. 기획 때부터 참여한 ‘산 증인’ 강훈(37·사진) 살림출판사 기획부장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고대 그리스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 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던 그는 2002년 뒤늦게 출판계에 발을 디뎠다.

 “출판이나 연구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분야를 파고 든다는 공통점이 있고, 보람도 있을 것 같았죠.” 동기가 비교적 단순하다.

 일이 손에 익을 무렵인 2004년 학계며 출판계에서 “인문학이 죽어간다”는 비명이 커졌다. 그는 거기서 오히려 기회를 봤다.

 “독자들이 고전이나 양서를 싼 가격에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면 반응이 있지 않을까 싶었죠.”

 곧바로 불문학 교수 등 4명의 기획위원과 함께 문고판 기획을 시작했다. 시장조사도 병행했다.

 “70년대 인기를 모았던 을유문고나 삼중당문고의 경우 고전이나 번역문학에 치우쳐 독자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 것이 소멸 원인이라 봤어요. 물론 전반적으로 경제 형편이 나아지는 등 독서환경의 변화도 작용했겠지만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살림지식총서’는 국내 저자가, 200자 원고지 350매 안팎의 단출한 분량에, 주제의 핵심을 대중적 글쓰기로 다룬다는 원칙을 세웠다. 거기에 그때 그때 독자들의 궁금해 할 주제를 발 빠르게 다루는 ‘특집’이 더해져 ‘장수 문고’의 터를 닦았다.

 “지금까지 280 명의 필자가 참여했는데 국내에서 강의하는 일본인 학자까지 포함한 순수 국내 기획물입니다.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이 이슈가 됐을 때 낸 중국특집 10권은 반응도 좋았죠.”

 그는 이 시리즈가 인문분야 젊은 연구자들과 독자들을 연결하는 데 나름대로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이 문고를 통해 처녀작을 낸 필자가 50여 명이고 아직 절판된 책이 없다니 그럴 만하다. 발주해 놓은 원고가 50종을 넘는다며 그가 말했다.

 “독자들이 원하는 한 끝까지 가서 프랑스의 ‘끄세주 문고’같은 것을 만들어야죠.”
 그의 목소리에 한국 출판의 희망이 묻어났다.

글=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