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산다>21.끝 산골에 꿈심는 일곱 학사농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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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때 농민들이 우울한 얼굴로 보따리를 쌌던 경북상주군화북면 청화산계곡.산이 깊어 봄도 더디 온다는 해발 7백50m의 산간마을이 요즘 새로운 활력과 희망으로 설레고 있다.
시끌벅적한 대도시보다 자연이 좋아 뜻을 함께 한 7명의「학사농군」들과 그 가족 20여명이 이 마을을「떠나는 농촌」에서 도시인들의「귀거래 마을」로 바꾸어가고 있기때문.
서울산업大.한양대 대학원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인천 운봉공고에서 재작년까지 18년간 교직생활을 해온 林亭道씨(43)가 주축이 된 이들은 수경재배로 기른 콩나물과 상추.양상추.케일등이 전국으로 팔려나갈때 약동하는 삶터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느낀다고 했다.
이 산골에 도시인들의「청화산농원」이 설립된 것은 90년께.84년 친지가 있는 이 마을에 그들과 함께 땅을 약간 사두고 뽕나무를 키웠던 林씨는 서울과 이곳을 오가다 92년에는 아예 식구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그전에 이미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다 정년퇴직한 조삼수씨와 그의 동료 정종식씨가 작은 규모로 수경재배를 하고 있었으나 의욕이 왕성한 林씨가 이곳에 합류하자 마을은 새로운 기대감으로 약동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자연속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 소식을 전해들은 후 모여들었고 함께 일하길 원해 현재의 규모로 불어났다.
林씨외에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후 무역업에 종사했던 정종식씨(43),인하대 화학공학과를 거쳐 서울이수화학 기획과장을 지낸 나태수씨(40),서울에서 호텔업에 종사했던 백승관씨(45),교사출신 나경희씨(35),부천공업전문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의 구청공무원으로 재직했던 김은희씨(25),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정년퇴직한 아버지가 상주로 내려오자 함께 내려와 충북대학원예과에서 공부한 나정원씨(25)등 모두는 한결같이 자신들이 농군으로 불려지길 바란다.
「농업을 기업화하자」는 포부하에 이들이 하는 일은 밭에다 심던 것대신 지하 2백여m에서 끌어올린 광천수로 무공해 채소를 생산해내는 일.林씨가 전문직업인을 지향하는 학생들에게 토목공학을 가르치다 난데없이 수경재배농군이 된 것은『땅에 대한 그리움에다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토박이였던 林씨의 부인 金仁淑씨(40)는『처음에는 농촌생활이 겁도 났고 당시 국교6,4학년이었던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어 반대를 심하게 했어요.결국 남편이 원하는 일이기에 따라 나섰는데 이제 후회보다는 솔직히 희망과 기쁨으로 가 득차있어요』라고 말했다.
이「귀거래마을」에는 현재 이들외에도 잎담배농사를 짓다 이들의일에 호응해 함께 나선 토박이 농민들도 10여가구 있어 농장 식구들은 모두 70여명이 넘는다.
이들이 지난해 생산한 채소는 모두 34t정도로 2억5백만원의수입을 올렸다.서울.부산.대구.청주의 대형백화점등으로부터 주문이 밀려 미처 공급을 못할 형편.
얼굴에 미래에 대한 도전과 희망이 가득차 있음을 느끼게 하는이들 학사농군들은『농사가 단지 힘들고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하는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얼마든지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배운 것을 활용하면서 농산물개방에 대처할 수가 있다』 고 밝은 얼굴로말했다.이들은 생명을 키우는 농사만큼 창의적인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이들은 자연으로 향하는 도시인들의「新귀거래사」가 더이상구성진 가락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듯 했다.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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