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뚜껑열자 4개사 중 최고 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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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8월, 최원석 회장이 리비아를 방문했을 때 5인위원회 위원과 함께 자달라 장관(앞 오른쪽)이 최 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최 회장의 영어 실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코노미스트 리비아의 문을 여는 길은 험난하고 예상도 할 수 없었던 암초가 잠복해 있다 돌출하기도 한다. 최 회장은 마지막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입찰 내정가가 적힌 봉투를 3개나 만들어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한 것은 어떤 변수가 나올지 몰라 모두 비밀에 부친 채 가변성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해외공사를 수주한다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데, 특히 리비아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따낸다는 것은 경험 없는 업체가 도전하기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봉투를 3개나 만들어 입찰가를 넣어 보냈다면 회장님도 입찰 직전까지 최종 결심을 못하고 계셨다는 말씀 아닙니까.
“할 수가 없어요. 변수가 워낙 많아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입찰 서류를 넣고, 런던에서 또 네고를 하게 돼 있으니까 그때는 내가 서울에 있어도 서울에 있는 게 아니고 사우디에 있어도 사우디에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정보 라인은 전부 열어놓고 끝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거지요. 단일 공사로는 세계 최대라고 하는 입찰인데 생각해 보세요. 누가 그 일을 해낼 수 있겠어요. 누구도 장담하지 못 해요. 회장인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승부를 거는 겁니다. 피가 마른다는 소리,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실감 못할 겁니다.”

-봉투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굉장히 초조하고 궁금했겠는데, 결심이 서면 어떻게 지시를 내립니까.
“가령 두 번째 봉투에 들어있는 입찰가로 결심이 서면 ‘2번 장가 보내라’고 하지요, 허허허. 그 당시를 생각하면 참 힘들었고 세계를 상대로 싸운 겁니다. 발표 때까지 잠을 잘 수 있겠어요? 퇴근 시간이 거의 자정입니다. 내 사무실에 전 세계 주요 도시로 연결할 수 있는 전화가 있기 때문에 요만한 정보가 들어와도 확인해야 되고 긴급히 연락을 취해야 할 때도 있어 중요 인사를 만나다가도 새벽에 달려올 때가 여러 번이었어요. 그럴 땐 수위가 놀라 잠을 깰까봐 지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말이지. 처음 얘기지만 사무실 소파에 앉아 깜박 졸다보면 아침이고, 설렁탕 한 그릇 시켜놓고 깍두기를 씹으면 그렇게 쓸 수가 없어요. 입에서 맛을 잃은 겁니다. 며칠 밤 새우면 맛을 보는 혓바닥이 균형을 잃어요. 우리나라 대기업 중에 회장실에 치약·칫솔 놔놓고 쓰는 회장이 있어요?”

“배 속은 항상 반쯤 비워놔”

-입찰에 들어가면 그렇게나 신경을 쓰시게 되는군요.
“리비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정신적으로도. 공사도 컸지만 제2 창업을 거기에 걸었으니까요. 잠시도 한눈 팔 수 없고 내 결정 한 마디에 그동안 수많은 직원이 고생한 거, 수없이 미국을 드나들면서 기술 교섭한 거, 컨소시엄을 하고 해외 정보 취합하고, 한 가지라도 더 얻으려 사람 만나고, 그런 무수한 수고들이 순간에 날아갈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 실패하면 방해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어요. 그런 생각까지 하면 맨 정신으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그냥 굴러온 게 결코 아니지요.”

-그렇게 해서 수주했던 공사를 내놓고, 심정이 오죽 하시겠습니까만 그런데도 건강을 유지하고 계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배 속에 욕심만 채워져 있었다면 벌써 호적에서 이름이 지워졌을지도 모르지요, 허헛. 이런 소리 하면 어떻게 들을지 몰라도 배 속을 항상 반은 비워두고 지냈어요. 이런 날이 올 거다 생각한 건 전혀 아닌데 내가 살아가는 철학이 그랬어요. 그걸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다른 성취욕이 있었다고 할까, 늘 새로운 도전을 생각했으니까요.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죽은 생명이잖소. 하여간 그렇게 지내 온 덕분에 견뎌낸 것 같아. 절반은 잃어버려도 비워둔 반에서 항상 새로운 도전이 싹트니까. 허허헛.”

웃음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의 분홍 혈색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10위권 재벌그룹을 이끌었던 과거 경륜이 어쩌면 본인의 말처럼 늘 새로운 도전을 현실화시키겠다는 집념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물론 나도 인간인데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때가 한두 번이었겠소? 지금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겠지만 참…. 몇 번 죽을 고비 넘기고, 모래 바람이 휘몰아칠 때는 금방 있었던 길이 금방 사라지는 게 사하라 사막인데, 자갈이나 돌덩어리 같은 골재를 캐야 공사를 하니까 죽을 운명이면 여기서 죽는다 하고 찾아 헤매고, 그러다가 모래 바닥에 누운 채 잠들 때도 있었고…. 물론 공사를 따낸 후엔 카다피 대통령하고 많은 각료가 나서서 정말 애정 있는 도움도 줬고, 그런 분들까지 생각하면 더 고통스럽지만 어쩌겠소. 언젠가는 옛날의 최원석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건강은 도둑맞지 말아야지. 흠….”

최 회장은 더 이상 기억하기를 마다하고 애써 숨고르기를 하는 듯했다. 숱한 상념이 밀려들었을 것이다. 기자로서는 공연한 질문을 했다 싶으면서도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새로운 비화를 더 공개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셈이었지만 그토록 근접에서 만나 왔고 누구보다 가까이 했던 ‘최원석-카다피’가 그렇게 맥없이 인연이 끊어질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것은 줄곧 의문으로 남는 부분이어서 그걸 물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만 그처럼 신뢰하고 인간적으로도 가까웠다면 단순 계산이긴 하지만 전체 400억 달러가 투입되는 5단계 공사 중에 1, 2 단계를 마친 동아가 10억 달러도 안 되는 7000억원 정도의 유동성 문제로 파산까지 하게 됐는데, 리비아 정부와 그 정도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까.
“그 얘기하면 내가 열이 올라요. 아직은 얘기 안 하겠소. 다만 5인위원회 망구시 장관은 총리로 격상됐고 자달라 장관(발주처 장관)이 카다피 대통령 특명을 받고 나를 만나려 두 번이나 한국에 왔다는데, 나를 만나지 못하게 했어요. 연락조차 해주지 않았어요. 그걸 비서한테 나중에 듣고 알았소. 자기네 비서를 1주일이나 서울에 남겨놓고 돌아갔다니 말이야….”

-카다피의 특명을 받은 인사라면 공식적이 아닌 사적인 방문이었다 해도 밀사로 온 셈인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그렇게 한 사람들한테 물어야지요. 그렇게 해도 되는 건지. 자달라 장관이 한국에 왔다는 자체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 당시에 회장님이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습니까.
“그땐 파산선고를 받기 전이고 내가 채권단하고 경영권 문제로 대립은 했지만 자유롭게 다니고 있을 때지. 구금이 된 것도 아니고 재판을 받을 때도 아니란 말이오. 자달라 장관만 만나게 했으면 기성고(이미 공사를 해서 받을 수 있는 돈)를 앞당겨 계정해 줄 수도 있는 거고 유동성 자금은 충분히 해결했을 텐데 (정부가)부도 낼 작정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만나는 걸 차단시킬 수 있겠소! 휴우…. 하늘은 빈 틈이 없어요. 놓치지 않고 다 내려다보고 있어. 하늘이 심판하겠지.”

▶모래바람 속에서 사막에 묻혀있는 골재를 채취하고 있는 브레가 공장 모습. 골재 채취 과정에서 수천년 전의 불가사리와 나무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신동철 소장(왼쪽)이 설명했다.

공항서 입찰 서류 압류되기도

마침내 크고 무거운 11개의 트렁크를 일곱 사람이 나눠 들고 TF팀은 리비아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암초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가 돌출한다는 것이 이런 경우겠지만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서 입찰 서류가 압류되는 것이다. 회장의 동생인 최원영 사장까지 트렁크 하나를 들게 하고 입국을 했는데 검사대에서 막혀버린 셈이었다.

여섯 사람을 이끌고 리비아로 향했던 김교련 사장 회고는 기가 차더라고 했다.

“박스 11개를 들고 들어가니까 안 된다, 못 들어간다는 겁니다. 참 무식하고 속이 터질 노릇입디다. 입찰 서류라고 누누이 설명해도 전부 열어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X선 검사대 통과로는 어림없다는데 입찰 서류를 어떻게 공개합니까. 그것도 사회주의를 비방하는 글이 있나 해서 일일이 살펴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입찰 서류에 비방 글이 왜 들어가요. 그러니 스파이가 노리고 있나 싶기도 하고, 누굴 믿고 그렇게 하라고 서류를 내주겠습니까. 정말 진퇴양난입디다.”

-공항 심사관들이 대수로 공사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던 겁니까?
“중요성을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들도 역할이 있다는 거지요. 통하지가 않아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아예 듣지를 않는 겁니다. 자기들은 검색 업무만 한다는 거라. 노골적으로 이걸(돈)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어떻게 해요. 삼성에 있는 김영선 이사던가? 이름은 정확지 않은데 그 사람이 보안사 대령 출신입니다. 김 이사가 공항 사람들하고 잘 통한다는 걸 알고 있어 급히 전화했더니 지금은 늦어서 안 되니까 내일 아침에 하자는 거예요. ‘안 돼! 내일 오전까지 벵가지에 우선 오리지널 두 박스를 접수시켜야지, 그게 안 되면 입찰도 못하고 60억 달러가 날아간단 말이오!’ 소리를 지르니까 김 이사도 주춤하는 느낌이 와요.”

-입찰 내정가를 60억 달러로 했었습니까?
“입찰할 때는 엉터리 액수를 퍼뜨리기도 했으니까 60억 달러 공사라고 했던 거지요. 내정가는 최 회장만 알지, 막판까지도 비밀이었습니다. 하여간 60억 달러 놓치면 동아만 곤란한 게 아니라 한국도 망신인데 당장 좀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래 가지고 김 이사가 두 박스를 우선 빼줘서 벵가지까지 보내고 아홉 박스는 그 이튿날 아침에 다 찾았지요. 그때 삼성에서는 참여를 못했는데 김 이사가 아니었으면 낭패 당할 뻔했던 겁니다.”

-입찰서 제출할 때 내정가도 제출해야 되지 않습니까?
“했지요. 근데 액수는 그때까지도 몰랐다는 얘깁니다. 트리폴리에 도착하니까 최 회장한테서 연락이 오는데 2번 봉투를 장가 보내라는 겁니다. 최 회장도 입찰가를 정하면서 정말 고민이 많았을 텐데 일체 내색을 하지 않습디다. 밖에서 생각하는 최 회장하고 경험을 해보면 의외다 싶을 정도로 다릅니다. 결점 없는 사람이 없지만 대범하고 선이 분명해요. 이게 회장의 역할이다 하면 죽어도 본인이 감수를 합디다. 그런 특징이 있어요. 잔소리가 거의 없고. 명예회장님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지요.”

우려했던 메시지 날아들어
이윽고 최종 네고가 런던에서 시작됐다. 아쉽게도 마지막 협상 대상자에서 대우는 탈락했다. 동아와 현대, 소련, 이탈리아 업체가 선정됐으며 네고 미팅이 9일간 계속된다고 알려 왔다. 그런데 정부에서도 진출을 막으려 했던 동아가 런던까지 오게 되자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들이 이어졌다.

60여 개에 이르던 선진 업체들이 줄줄이 탈락하고 네 업체가 선정된 속에 동아가 최고 평점으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이었고 동아 본사는 환호성이 터졌고 흥분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심정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4개 업체를 선정하는데 우리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까 본사 중역들도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거기에다 4개 업체 중 2개 업체가 한국이라니까 우리 건설업계 수준이 정말 선진 업체들을 따돌릴 만큼 향상된 건가 싶고 오히려 의아해 했지요. 평가 기준은 우리도 모르는 겁니다. 다만 동아의 경우는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그 사람들이 실사 나왔을 때 ‘양복점에 온 것 같다’고 하면서 건설과 수송을 맡은 컨소시엄 회사들이 전부 그룹 안에 다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기 때문에 최종까지는 가겠구나, 그런 감은 있었지만 최고 점수는 의외였던 거지요. 그래서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여러 번 당부했어요.”

-최우선협상 건설사가 됐으면서도 경계심이 생기더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최고 점수를 받아 기분은 좋았지만 9일간이나 네고한다는 게 이상했어요. 그건 변수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9일간이나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니오. 그게 나는 솔직히 개운하지 않았던 겁니다.”

최원영 사장도 런던까지 따라왔고 브라운 앤 루트와 프라이스 브러더스 팀 5명도 합류하면서 발표와 함께 이미 동아는 가장 풍성한 멤버를 과시하는 입장이 됐지만 역시 문제는 네고 협상이었다. 리비아 측은 5인위원회를 대표하는 수누시 위원이 직접 네고 협상을 지휘했다. 동아는 카운터 파트가 김교련 사장이었다. 모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환호하던 얼굴은 사라지고 마치 포로처럼 눈치만 살피는 모양새가 됐다. 마침내 9일째 되던 날. 아니나 다를까, 역시 우려했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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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동아방송예술대학 이사장
[前] 동아건설산업 대표이사회장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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