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0년 침묵깨고 장편소설 화두 출간 崔仁勳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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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0대 젊음으로 「광장」을 썼고 이제는 60이 다된 원숙함으로 이 작품을 내놓게 됐습니다.「광장」에서 남북한의 양 이데올로기에 염증을 느낀 젊은 주인공은 자살했지만 우리의 역사,인생은 그대로 계속됐습니다.이제 한 시대를 살아낸 원 숙함으로 현실적 이념에서 자유롭게 풀려나 지난 시대를 꼼꼼히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작가 崔仁勳씨(58)가 장편『화두』1,2권을 민음사에서 펴냈다.73년 『태풍』을 中央日報에 연재한 것을 끝으로 본격소설에서는 침묵을 지켜온 崔씨가 20여년만에 내놓은 장편이다.61년 『광장』을 발표,문단의 주목을 끌며 마침내 그것을 현대의 고전적 지위에 올려놓았던 崔씨는 줄곧 문학과 이념을화두로 삼았다고 밝힌다.때문에 崔씨의 20여년의 소설적 침묵은다름 아닌 선방에 든 선승의 면벽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볼수 있다. 지난 1년간 외출도 삼간채 완성했다는 원고지 4천5백장에이르는 장편 『화두』는 자전적 회상소설로 볼수 있다.북한에서 해방을 맞고 6.25때 월남했으나 남한에서마저 정착하지 못한채미국으로 건너간 가족을 둔 주인공 「나」가 지나온 시대의 의미를 천착해들어가고 있다.
지나온 시대의 회상에 의해 해방,조선인민공화국수립,6.25,5.16,유신,광주민주화운동등 우리의 현대사와 독일통일등 세계사의 쟁점들이 떠오른다.또 장개석.모택동.프랑코 등의 죽음을 계기로 그들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캐들어가며 작 품은 20세기의 정치사.사상사로 확대된다.또 이방인으로서 미국에 머무르면서 본 거대한 제국주의의 모습을 옛 로마제국과 연결시키며 제국주의의 속성도 캐들어간다.작가 崔씨는 이 거대한 정치.사상사적작업을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독서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때문에 崔씨 자신은 이 작품을「기억의 현상학」이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기억을 붙잡으려 했습니다.그리고 건전한 상식에 의해 그 기억들을 옮기려 했습니다.내가 산 세상,내가 읽고 느낀 것들을 끝까지 추적해 옮긴 것이 이 작품입니다.』 20세기의 거대한 지도를 그리기 위해 崔씨는 이 작품에 여러 문학적 기법을 동원하고 있다.작가의 설명이 전혀 필요없이 장면만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희곡의 기법을,자신의 소설과 희곡작품을설명하기 위해서는 문학평론적 문체를,역사나 사 상.문명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에세이적 기법을,그리고 대상에 대한 직관을 나타내기 위해선 경구적 단상등 모든 문학장르가 이 한편의 작품에 집결돼 있다.
『한 지식인으로서 20세기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폭넓게 바라보기 위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넣었습니다.내게 있는 정신적 재고를 아낌없이 털어놓기 위해 모든 장르의 기법을 동원한 것이지요.그러나 이런 기법들이 얼마나 소설적 미학구조속 에 녹아있는가 하는건 앞으로의 평가대상이지요.』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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