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고급 두뇌 모시기' 정부가 나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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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고급 두뇌의 공동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고급 두뇌가 해외로부터 활발히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고급 두뇌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고급 두뇌의 공동화는 국가의 지식경쟁력과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고급 두뇌의 유출이 심화되고 유입이 줄어들면 신(新)성장동력 산업 육성에도 큰 장애가 된다.

우리나라의 두뇌유출지수(IMD가 개발한 지수로서 1에 가까울수록 고급 두뇌의 해외 진출 성향이 강하다)는 1995년에 7.53으로 48개국 중 4위였다. 그러나 2006년에 4.91로 61개국 중 40위로 떨어졌다(2007년에는 5.89로 비교 대상 55개국 중 19위로 개선됐으나 여전히 95년 수준과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순(純) 두뇌 유입 비율 또한 90년 -1.3%에서 2000년 -1.4%로 0.1%포인트 악화됐다(순두뇌 유입 비율은 국내로 유입되는 해외 고급 두뇌들의 규모와 해외로 유출되는 국내 고급 두뇌 규모의 차이를 25~65세의 국내 노동인구로 나눈 값으로 한 국가의 고급 두뇌 수급을 보여 준다).

또 미국 과학기술재단에 따르면 92~95년 사이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다섯 명 중에 한 사람(20.2%)만 미국에 남던 것이 2000~2003년에는 두 명 중에 거의 한 명(46.3%)이 미국에 잔류하게 됐다.

그렇다고 고급 두뇌가 해외에서 많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급 두뇌 유치 실적이 저조하다. 우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 중에 교수 등 고급 두뇌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에 0.18%(9429명)밖에 되지 않았다.

외국인 박사과정 학생 유입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2002년 기준 한국의 외국인 박사과정 학생 수는 649명이었다. 미국 7만8884명, 영국 2만2824명 등에 비해 현저히 적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평균 6527명의 약 10% 수준이다. IT.BT.NT 등 과학기술 분야 해외 고급 두뇌 유치를 위해 IT Card, Gold Card, Science Card 등 제도를 두어도 이를 통해 유치한 해외 고급 두뇌는 2006년까지 2260명에 불과하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영국.미국.캐나다 등 세계 각국은 고급 두뇌 유치를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은 2002년부터 고급 기술 이민 프로그램(HSMP)이라는 고급 두뇌 유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내 노동자가 부족할 경우 1년의 체류 허가가 주어진 후 연속 4년의 체류 자격 연장이 가능하며, 이후에는 학력, 직업, 과거의 수입, 취업 희망 분야 관련 업적, 배우자 또는 동거인의 업적 등 5개 항목을 평가해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미국은 고급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취업 목적의 영주 비자인 EB1(최우선 취업 제1 순위) 비자와 EB2(전문직 제2 순위) 비자, 단기 비자인 H1B(특수기능 종사자) 비자 제도를 두고 있는데, 이들 비자는 한해 14만 명 이상에게 발급된다.

캐나다도 포인트제로 운영되는 기술이민(skilled worker immigrants) 제도가 있다. 캐나다에 필요한 교육, 어학력, 직업 경험을 보유한 숙련노동자를 대상으로 67점 이상이면 기술 이민 비자가 발급되는 제도다.

결국 세계적인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이나 한국의 늘어나는 고급 두뇌 유출과 부진한 유입 추세를 감안할 때, 이젠 정부가 고급 두뇌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우선 해외에 진출해 있는 한국인 고급 두뇌를 활용하는 전략부터 세워야 한다. 이들은 한국의 소중한 인적 자원 및 네트워크의 기반으로 활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외 과학기술자 단체와의 공동연구 지원, 재외 과학기술자 단체 소속 과학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국내 수요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이들의 능력과 정보에 대한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다 늘고 있는 해외 유학생의 귀국을 촉진하기 위해 '유학생 창업 특구' '유학생 창업 지원 펀드' 등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 이민 관련 제도도 고급 두뇌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의 이민제도는 미국.영국 등에 비해 허가 기간이 짧고 또 자격 요건도 지나치게 경직적이어서 해외 고급 두뇌의 국내 정착도를 높이기 어렵게 돼 있다. 따라서 비자 기간 연장을 포함, 이민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 이민제도를 객관적이고 시의성 있게 하기 위해 포인트제도 도입이나 시장 수급 등 이민평가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 유학생에게 '창업 비자'를 발급해 이들의 국내 정착률을 높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 고급 두뇌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27개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47.5%인 9475명이 비정규직 근로자이고, 그중 전일제 기간제 노동자는 25.6%(2429명)에 불과하다. 국내 고급 두뇌의 창의적 의욕을 높여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케 하기 위해서는 국내 고급 두뇌와 중소기업 간의 공동연구, 기업의 고급 두뇌 인턴 채용, 고급 두뇌 창업클러스터 등을 지원하고, 고급 두뇌 사업아이디어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의 지원 방안이 수반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교육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 국내 교육을 벗어나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귀국을 꺼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공교육을 강화하고, 특히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과 연구의 두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등학교까지의 공교육뿐 아니라 대학에 이르기까지 이런 수준의 교육개혁이 있어야 급증하는 해외 유학을 줄일 수 있고, 해외의 우수한 학생을 유치할 수 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 지식산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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