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귀여운 여자 ? 터프한 여자 ? “내 안에 다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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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탤런트를 거쳐 충무로에 입성한 정려원. 다중인격자라는 만만찮은 캐릭터를 소화해냈다.김상선 기자

  변신이 배우의 특권이라면, 코믹멜로 ‘두 얼굴의 여친’(감독 이석훈·9월 13일 개봉)은 특히 여배우의 변신이 재미있는 영화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애교로 매달리던 여자 ‘아니’가 한순간에 폭탄주와 욕설·주먹질까지, 남자 뺨치는 여자 ‘하니’로 돌변하는 모습이 귀여운 쾌감을 준다. 실은 같은 사람인데, 비극적인 연애사에 충격 받아 다중인격장애를 겪는다는 설정이다.

 아니를 만나 모처럼 연애를 시작한 구창(봉태규)은 뒤늦게 수시로 나타나는 하니 때문에 갖은 곤욕을 치른다. 다채로운 연기로 스크린에 주연 신고식을 치른 정려원(26)을 만났다. 그녀의 또 다른 자아를 잠시 엿봤다.

 -귀여운 아니와 거친 하니, 그리고 본래의 인격까지 세 성격을 자연스레 오간다. 배우로서 도전이었나, 쾌감이었나.

 “도전이었다. 첫 주연작으로 버거울 것 같아 고사했다가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을 살 때 있는 돈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좀 무리해도 이 영화를 찍고 나면 내가 집 한 채를 소유한 부자가 될 것 같았다. 봉태규씨에게서 많이 배웠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생각이 뚜렷했다. 툭툭 던지듯 하면서도 인물에 밀착하는 것에 경력과 내공이 묻어났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으로, 그 덕에 내 걸음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다.”

 -아니와 하니, 어느 편이 쉬웠나.

 “내숭이라고 할지 몰라도 털털하고 애교 없는 성격이라 하니가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내 안에 잠자고 있는 하니라는 아이를 깨워서 연기를 시키기가 힘들었다. 열심히 한다고 한 욕설이 처음에는 어색하다고들 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나한테 역할을 맡긴 것 아닌가, 혼자 떨어져 내게 질문을 던졌다. 뭐가 두려운데, 넌 할 수 있어, 하면서. 그렇게 세뇌하고 기다리자 출처 없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거칠 것 없는 하니의 성격과 행동, 비극적인 과거사 등을 ‘엽기적인 그녀’와 비교할 사람이 많겠다.

 “그런 비교도 좋다. 전지현씨가 아름답게 나왔고, 흥행도 잘된 영화 아닌가. 다만 우리 영화는 엽기보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양면성을 다룬다. 그걸 현미경으로 확대해 코믹하게 보여주는 거다. 시사회 때 여자들은 확실히 하니를 더 좋아하더라. 남자들? 연애상담은 하니와, 연애는 아니와 하겠지. (웃음) 좋아하면 불편하고, 편하면 친구 아닌가.”

 -실제 다중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참조했나.

 “다큐나 방송 프로를 봤는데, 재미있다기보다 무섭고 놀라웠다. 실제 모습대로 따라하면 다중인격을 겪고 있는 분이나, 그 주변 분들이 힘들 것 같았다. 내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 아니는 완전히 4차원 딴 세상 소녀였고, 하니는 더욱 괴팍했다. 그걸 어느 선에서 조절하느냐를 고민했다. ‘오버’도 ‘언더’도 안 하려고 했다.”

 -극중인물에서 쉽게 헤어나는 편인가.

 “아니다. 운동회에서 나는 아직도 달리고 있는데, 남들이 시간 다 됐다고 운동화도, 바통도 뺏어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호흡조절법을 배웠다. 조명 한번 바뀌면, 눈 한번 깜박하면, 후딱후딱 다른 사람이 돼야 했으니까.”

 -가수(샤크라)로 출발해 연기자가 됐다. 예상한 일인가.

 “전혀. 가수가 된 것도 호주에서 대학 1학년 때 한국에 놀러 왔다가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약사나 통역사가 되고 싶었는데, 성적이 안 돼서 다른 과를 갔다. 가수활동을 하면서 아침드라마를 찍었는데, 막 울면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 있었다. 무대에서는 못 느끼던,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그때 들었다.”

 -지금처럼 낙관적인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비관의 바닥에서 헤엄친 경험이 있을 텐데.

 “한때는 꽤 우울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마음 아픈 일이 있으면 그걸 들었다 놨다 하곤 했다. 인생의 목표가 없으면 우울하고 방황하지 않나. ”

 -어쩐지 인터뷰보다 심리대화를 하는 기분이다. 이번 영화도 배우에게 심리치유의 경험 같은 대목이 있었을 것 같다.

 “실제로 역할 바꾸기 놀이를 치료방법으로 쓰지 않나. 평소 남의 얘기 상담하는 걸 좋아한다. 내 인생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내가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답이 당신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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