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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 주택가의 추악한 이면-디스터비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호 14면

사고로 아버지가 죽은 후 문제아가 된 케일은 결국 90일의 가택연금에 처해진다. 발목에 부착된 감시장치 때문에 집 앞 도로에조차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된 케일은 엿보기에 몰두한다. 앞집 남자가 가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 겨우 10살이 넘은 꼬마들이 포르노 방송을 보는 장면,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소녀가 비키니를 입고 수영하는 장면 등을 훔쳐보던 케일은 뭔가 심상치 않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옆집의 남자가 한 여인을 데리고 와 죽이는 장면을 지켜본 케일은, 그 남자가 최근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짐작한다. 스릴러 영화인 ‘디스터비아(Disturbia)’의 키워드는 교외와 엿보기다. 교외라는 공간은 정말 묘하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보았다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중산층이 모여 사는 교외는, 쾌적한 환경과는 별개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날것으로 들끓는 곳이다. 불륜은 일상사에 불과하고 가정 내 폭행이나 사소한 질투심에 눈이 먼 살인까지 서슴없이 벌어진다. 교외는 일종의 모델하우스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해 보이지만, 그 안은 온갖 모조품이나 지저분한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 교외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서는 엿보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죄악이다. 케일은 남을 엿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위기에 몰리고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살인마는, 그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먼저 치고 들어가 살인마의 정체를 밝히든가, 아니면 교활한 음모에 당하든가. ‘디스터비아’는 영리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디스터비아’는 ‘틴 무비(teen movie)’다. 근육질의 영웅이 등장하는 액션영화가 아니라 죄책감에 사로잡힌 소년이 악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청춘 스릴러영화다. 아무리 작전을 세운다 해도 평범한 문제아가 연쇄살인마와 대적하기에는 무리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 덕에, 케일이 살인마와 싸우는 과정은 더욱 실감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설픈 주인공 덕에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친절한 이웃이 교외의 살인마라는 사실이 더욱 소름 끼치게 느껴지는 것이다. 글 김봉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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