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나폴리서만 12년…유럽의 속살 전해드리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양생물학연구소’에 근무하는 천종태(48) 박사는 특이한 경력을 가졌다. 연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피츠버그 대에서 분자 신경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뿐 아니다. 유학시절 이탈리아 여자 마리안나를 만나 열애 끝에 미국서 결혼식을 올리고는 이탈리아 나폴리에 정착해 12년 째 살고 있다.

 미국 생물학교재에도 연구실적이 실린 그가 에세이집 『카페 에스프레소 꼬레아노』(샘터)를 냈다. 이 재주 많은 학자가 마침 서울에 왔기에 만났다.

 “이제 두루 체면이 서네요. 친지와 친구들에게 그간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보여줄 수도 있고, 그간 매일 컴퓨터와 씨름하는 동안 뭘 하는지 궁금해 했던 가족들에게도 결실을 내놓을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군사정권 시절 한창 데모하던 친구들을 떠나 도망치듯 유학 갔던 일이 마음에 걸린다는 표정이었다. 이번 책이 한국을 떠난 20년 간의 존재 증명으로 보였다.

그런데 내용은 칙칙하지 않다. 오히려 밝고 재미있다. 육지로 떠나는 마지막 배 편 시간을 넘기려는 음흉한(?) 속셈이 무산됐던 섬에서의 데이트, 2002 월드컵 당시 카페에서 한-이탈리아 전 중계를 보다 벌어진 소동 등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그렇다고 신변잡기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와 한국의 문화를 비교하는 시선이 자못 날카롭다.

 “이탈리아와 한국은 케첩과 고추장, 스파게티와 비빔밥의 차이라 할까요. 보기엔 다같이 빨간 음식이지만 맛은 아주 다르잖아요.”

 나폴리의 남루함 혹은 무질서함을 꼬집는 의견에도 색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통일을 이룬 지 오래지 않았고 그 전에는 외세의 지배를 받았기에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 체질화한 때문이란다. 대신 노숙자들에게도 에스프레소 커피 대접하기를 마다 않는 마음 씀씀이를 전한다.

 글 솜씨도 보통을 넘는다.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옛 대중가요까지 동원한 글에선 한국을 떠난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생물학이란 것이 다른 자연과학에 비해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학문이기도 하고 외국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편지 쓸 일이 많아서…”

그 덕인지 인터넷 조인스닷컴의 그의 블로그 ‘지구는 둥그니까’는 55만 명의 방문객을 넘어섰다.

 “현지인들이나 가보는 유럽의 속살을 소개하거나 제 3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를 다룬 글을 많이들 사랑해 주더군요.”

 그런 그가 보기에 한국사회의 발전은 역동적이긴 하지만 미국식 개인주의가 밀려드는 듯해 섭섭하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옛 것에 대한 존경심이 아직도 강하다”며.

글=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