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각>작품보다 이미지에 빠진다-공연문화 수요는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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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뮤지컬『캣츠』가 공연되고 있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연일 관객들이 몰리고 있다.
최고 8만원씩 하는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전체객석 2천4백석의 90% 가까이가 유료관객들로 채워지고 있다.C석(4만원)이하의 비교적 싼 자리는 이미 전회 매진 상태고,빗발치는 요청에 따라 주최측은 당초 18회로 예정된 공연 횟수를20회로 늘리기로 했다.
『캣츠』의 유명세 때문일까.
70년대 리듬 앤드 블루스의 여왕 로버타 플랙이 얼마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가진 공연때도 거의 전 좌석이 매진됐다.빌보드차트 1위의 미국가수 브라이언 애덤스 내한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공연단이나 아티스트의 공연만 그런건 아니다.연초에 있었던 국내 뮤지컬극단의『아가씨와 건달들』공연도 그만하면 대성공이었다.25회 공연 전회에 걸쳐 매진행진이 계속됐다.
그런가 하면 92년1월1일부터 공연을 시작한 소극장연극『불좀꺼주세요』는 이미 1천회 공연기록을 세우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무기한 연장공연을 계속하고 있다.민족극 계열의 노래극『노동의 새벽』도 비록 1주일이라는 단기공연이긴 했지만 전회 滿席을 기록했다. 이름이 있거나 좀 볼만하다는 얘기만 들리면 여지없이 사람이 몰리고 있다.볼거리를 제공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따지지 않는다.애들레이드로 분장한 尹石花여도 좋고,『메모리』를 열창하는 실비 팔라디노여도 상관없다.『강철 새잎』의 진한 감동 을 전해주기만 한다면 민중가수 류금신도 좋다는 것이다.그만큼 우리사회가 성숙했고,문화적 포용력을 갖게 된 탓이라고 흐뭇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제화.개방화 드라이브속에 正體性 함몰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그러나 분명한 것은문화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그것도 폭발적으로 늘고있다.소득과 교육수준 향상에 따른 당연한 결과 아니겠느냐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놓쳐버릴 위험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상품 자체보다 상품이 주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포스트모던사회적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상품과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 사이에 만들어지는 분위기.상징성을 기준으로 상품을선택하는 경향이 비단 신세대들만의 얘기는 아니라 는 것이다.
『캣츠』에 쏠리는 관심은 이른바「극장식 소비」「축제적 소비」경향을 대변하고 있다.한편의 완벽한 뮤지컬이 공연되는 공간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하루 저녁 몇시간의 즐거운 분위기를 주체적으로 연출해냈다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몇만원 정도는 기꺼이쓰겠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캣츠』를 보면서 우리 연극계의 현실을 개탄하고,장래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만큼 부질 없는 일이다.
『주라기공원』같은 할리우드영화를 보면서「어째 우리는 그런 영화를 못 만들까」고 자괴하는 거나 다를 바 없을 뿐더러 할리우드영화는 허용하면서 브로드웨이뮤지컬은 막는다는 이중잣대가 통할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캣츠』의 공연이 우리사회 저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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