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 4시10분 확정 발표까지 굳은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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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2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한나라당 전당대회장 단상에 올라가려던 이명박 후보는 장광근 캠프 대변인으로부터 온 휴대전화를 받았다.

"이겼습니다."

이 후보는 멈춰 섰다. 장 대변인의 보고가 이어졌다. "어제(선거인단 투표)는 졌습니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이겼습니다."

투표에 직접 참여한 '대의원+당원+국민참여' 선거인단에선 졌고,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이겨 신승(辛勝)했다는 얘기였다. 이 후보는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옆에 있던 주호영 비서실장은 "뭐라고 개념 짓기 어려운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이 후보는 오전까지만 해도 '낙승(樂勝)'을 예상했다. 캠프는 7%포인트 차이 승리를 점쳤다.

단상에 오른 그의 얼굴은 자신의 후보 확정 발표가 있은 4시10분쯤까지 굳어 있었다. 이 후보는 잠긴 목소리로 수락 연설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쇳소리가 섞였다.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저를 지지했든, 하지 않았든 우리 모두는 하나"라며 "정권을 반드시 되찾아 오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12월 19일 정권교체, 이뤄진다. (정권교체를 이뤄) 영광을 노래할 그날까지 저 이명박과 함께 가자"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표정이 밝아졌다. 웃음을 되찾아 갔다.

행사장 밖에서 기다리던 수백 명의 지지자의 환호에 그는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화답했다. 그러고는 "이건 종착역이 아니라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란 구호를 외쳤다. '오, 필승 이명박'이란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오후 8시50분 이 후보는 '한나라당 17대 대통령 후보' 신분으로 여의도 캠프 사무실을 찾았다. 캠프 해단식 참석차였다. 인근 당사 앞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경선 무효"를 외치며 시위 중인 것을 감안해 연호 없이 조촐하게 '비공식'으로 치르려 했으나 지지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그는 정권 차원의 개입 의혹 등을 거론하며 "역사상 이런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여러분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다"고 격려했다. 이어 "당내 싸움이어서 힘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 번 못 높였다"며 "저도 꽤 잘 싸운다"고 우스갯소리도 했다. 그는 "진짜 힘쓸 때가 오니 빨리 들어가서 쉬시라"는 말도 했다. 이 후보는 일일이 이름을 부르거나 악수하며 캠프 요원들을 격려했다.

캠프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개표가 이뤄지는 동안 몇 차례나 가슴을 졸이며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개표 초기 2000여 표 차이로 이 후보가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몇몇 사람은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울먹였다. "졌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고 토로했다.

한 캠프 관계자는 "당 대표를 지냈던 박근혜 후보와 비교할 때 이명박 후보는 당직도, 공천권도 한 번 행사하지 못했던 당의 아웃사이더였다"며 "당심에서 지고 여론조사에서 이겨 박빙으로 승리한 데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국민이 시대정신을 선택했다"며 "이 후보의 출현으로 우리 정치는 정치 엘리트 시대에서 경영 엘리트로 주도권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고정애 기자, 김효혜 인턴기자

<이명박 후보 수락 연설 요지>

-국민과 한나라당의 위대한 선택에 고개 숙이며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저를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우리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

-원희룡 후보의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 홍준표 후보의 '서민이 잘사는 나라', 박근혜 후보의 '5년 안에 선진국을 만들자'는 공약, 저와 함께 만들자.

-치열한 경쟁이 더 강한 화합을 이룰 것으로 확신한다. 이번 경선을 통해 수권정당의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경선 과정에서 국민으로부터, 당원들로부터, 후보들로부터 (받았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뺄셈의 정치 아닌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 경제를 살려 달라는 요구와 분열된 사회를 통합해 달라는 시대적 희망을 반드시 이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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