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정치 보인 박근혜 눈물 한방울 안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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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박근혜,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의 패자, 박근혜 후보는 20일 엄숙한 표정으로 경선 승복을 선언했다. 박 후보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관중석에선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 후보 캠프의 핵심 참모인 최경환 상황실장, 유정복 비서실장,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 이혜훈 대변인 등이 단상 뒤에서 눈물을 글썽였다.그러나 박 후보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때로는 지지자들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이 후보의 연설이 끝날 때는 박수를 쳤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던 당원들이 "정말 담대하다"고 놀라움을 표할 정도였다.

박 후보에 이어 연설한 원희룡 후보도 "박 후보의 대인 같은 큰사람의 모습에 진심으로 존경과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은 "정말 큰 정치인이다. 승복하는 모습이 놀랍다"고 말했다.

박 후보의 '내공'은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빛났다.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탄핵 역풍'을 맞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칠 때 그는 당 대표를 맡았다. 취임 즉시 여의도 '호화 당사'를 버리고 천막당사 행을 결심했다. 일각에선 '정치 쇼'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는 구 당사엔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은 채 당 간판을 떼어들고 허허벌판의 천막당사로 걸어갔다. 당시 총선에서 50석도 건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차지해 강력한 야당의 위상을 지켰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유세 당시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그는 의연했다. 수술에서 깨어난 뒤 제일 먼저 "대전은요?"라고 물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대전시장 판세가 어떤지를 묻는 것이었다.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대전으로 달려갔고 한나라당은 대전시장 선거를 이겼다. 박 후보는 지금도 오른쪽 뺨에 '테러의 흔적'을 지니고 산다.

박 후보는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 대표를 맡은 뒤엔 두 번 눈물을 흘렸다. 첫번째는 2004년 총선 직전 TV연설에서 "한 번만 더 우리 당에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할 때였다. 두번째는 지난해 말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만났을 때였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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