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은 막자” 정부노력 결실/북핵대응 숨가빴던 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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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 외무 미 급파등 강경여론 무마 안간힘/유엔제재 때도 대화 계속 천명 북에 명분
북한 핵문제가 의외로 꼬여 급기야 유엔안보리로 넘어가는 위기상황 직전까지 치닫다가 막바지에 평화적인 해결국면으로 반전된 최근 보름동안 정부는 숨가쁜 대응을 해왔다.
정부는 당초 북한이 새해벽두 오스트리아 빈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사찰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때만해도 1주일이나 열흘 사이에 협의가 쉽사리 끝나고 1월말께 시찰팀이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미 미국과 북한이 작년 12월29일 뉴욕접촉에서 IAEA 사찰문제와 3단계 고위급회담 개최문제를 합의해뒀던 터라 빈에서 열린 IAEA와의 협의에서는 사찰시기·방법 등 절차문제만 매듭지으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북한­IAEA간 협의가 지난달 7일부터 24일까지 다섯차례나 열렸음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이 왜 저럴까』하면서도 사찰합의는 낙관시 돼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달 31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의 효력 정지조치를 철회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뒤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북한이 IAEA 사찰합의를 계속 미루자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핵문제를 안보리로 넘겨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미국에서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점차 커져 한반도 위기설이 고개를 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미국 언론에는 「주한미군에 패트리어트미사일 배치」 「정보지원단 한국파견」 등 북한 핵문제를 대화로 푸는데 불리한 보도가 터져나왔다. 이와관련,한국측은 미국정부에 『대화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같은 보도가 자제돼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설사 북한 핵문제가 유엔안보리로 넘어가더라도 대화를 통한 해결노력을 계속해야 하며,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신축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자신의 이같은 생각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분명히 전하고 미국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에 사찰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주어 어떤 일이 있어도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9일 한승주 외무장관을 미국에 급파했다.
미국에 간 한 장관은 앨 고어 부통령,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 등을 잇따라 만나 최악의 경우 유엔에서 대북제재조치가 논의되더라도 대화노력은 끝까지 계속한다는데 합의했다.
반드시 이같은 노력 때문에 아니겠지만 북한은 지난 12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미국과 대화를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IAEA 사찰에 긍정적인 반응을 한뒤 나흘만에 사찰수용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볼때 북한의 IAEA 사찰수용을 끌어낸데는 정부의 「대화를 통한 해결원칙」 견지와 「미국내의 강경세력 잠재우기」가 상당한 역할을 한 셈이다.<오타와=박의준특파원>
□북한 핵협상 일지
▲92년 4월10일 북한,IAEA 핵안전협정 비준
▲93년 3월12일 북한,NPT 탈퇴 선언
▲5월11일 안보리,대북한 결의안 채택
▲6월2∼11일 미­북한 제1단계 고위급회담(뉴욕) 북한,NPT 탈퇴유보 발표
▲7월14∼19일 미­북한 제2단계 고위급회담(제네바) 북한,I AEA와 사찰협의 재개 동의
▲11월11일 북한,미국에 일괄타결 제의
▲11월22∼23일 김영삼·클린턴 대통령,워싱턴서 북한핵 공동보 조 합의
▲12월3∼20일 미­북,뉴욕서 3회 접촉
▲12월29일 미­북한,뉴욕 추가접촉에서 핵사찰 수용 합의
▲94년 1월7일 북한­IAEA,협상시작
▲1월21일 북한,IAEA 사찰조건 수용불가 선언
▲1월25일 북한­IAEA 협상 결렬
▲1월31일 북한,북한­미 합의사항 이행촉구 및 NPT 탈퇴 효 력발생정지 철회 경고
▲2월12일 북한,핵협상 재개의향 시사
▲16일 IAEA,북한 핵사찰 수용발표,미­북한,뉴욕실무접촉 재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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