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저항시인」의 죽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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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신체제 막바지였던 70년대말 몇몇 문인들이 절필을 선언했던 일이 있었다. 「선언」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의 언론상황에서는 보도될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그들의 절필은 문단내부의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절필선언은 문인들 사이에서 문학과 문학인의 기능에 관해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찬성하지 않는 쪽의 입장인즉 『이같은 살벌한 분위기속에서의 글쓰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절필선언 문인들의 생각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체제가 경색되면 될수록 문인은 글로써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문학과 문학인의 기능에 관한 이같은 견해는 실상 60년대의 참여문학으로부터 노동문학·민중문학 등을 거쳐 80년대의 민족문학으로 이어지기까지 줄곧 갈등구조로 존재해왔다.
문학활동의 범주가 다만 글쓰는 일로서만 그쳐야 하느냐,글쓰는 일 이외의 「행동」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문학적 경향과는 관계없이 문인들마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참여」 계열의 문학이 정치체제나 사회현실과 관련된 것인 만큼 그 최대공약수적인 색깔은 체제와 상황의 변모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6·29선언」이후,특히 30여년에 걸친 군사정권체제가 종언을 고한 이후 벌어진 일련의 민족문학 논쟁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13일 타계한 김남주시인은 그같은 특수한 우리네 문학풍토에서 초지일관 고집스럽게 글쓰기와 「행동」을 함께 병행한 몇 안되는 문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인간적 혹은 문학적 평가는 두고두고 이루어지겠지만 「어두운 세상」에 항거해온 치열한 정신만은 오래오래 본보기로 남을만하다.
특히 9년여의 투옥기간중 교도소안에서 담뱃갑 은박지나 우유팩 또는 휴지조각에 깨알같은 글씨로 줄기차게 시작에 몰두해온 그의 시정신은 이데올로기야 어떻든 척박한 한국문학의 현실에서 하나의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좋은 세상,밝은 사회에서 따뜻한 서정시를 써보고 싶다던 그의 희망이 무산된채 숨을 거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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