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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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1부 불타는 바다 탈출(36) 소나무는 그때나 이제나 똑같아.치규는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자네 마음 같지 않다네.
눈 덮인 산은 언제 보아도 손 같다.
팔을 벌린 손같다.
앙상하게 서있는 나무들을 치규는 바라보았다.
앞산을 바라보던 치규는 몸을 돌렸다.
『여보 당신 그래서 되우?』 『무슨 소리?』 『그렇다고 당신이 그러면 쓰오?』 『무슨 소리를 하오?』 『딸이 왔는데 무슨소리요?』 『사위 놈 없는 딸 그 꼴 어찌 보노?』 치규는 논둑길을 천천히 걸었다.
돌아서는 치규의 마음에 비로소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보였다.
아내가 했던 말이 발에 밟혔다.
『당신이 그러면.』 『무엇이?』 『당신이 그러면.』 아내가 했던 말을 치규는 떠올린다.사위녀석은 끌려가 왜놈땅에 있고,딸아이 아이 낳으러 왔다.
치규는 천천히 몸을 돌리며 집쪽을 향해 걸었다.
겨울 산이 먼 뒤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산.그 산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나 와도 돼?』 그 말을 들었을 때 치규는 가슴을 쳤다.사위는 남의 땅 가 있는데 딸은 아이를 낳으러 온단다.
논둑길을 내다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사람아,이 밭이 언제 거짓말을 하던가.두덕두덕 밭두렁을 차며 치규는 혼자 웃었다.이쯤에서 돌아가세.
녀석이 훤칠했지.아암 그랬지.
꾸벅꾸벅 처가집에 절도 잘 하더니.
집을 향해 돌아서면서 치규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자네…이래도 되는가.』 『내가 안 그러면 누가 하게.』 『무슨 사람이 그런가.』 『왜?』 『들어가게.사위 생각을 해서라도.』 휘적휘적 치규는 걸었다.
우물가에서 동이를 인 여자가 물을 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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