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여성] 국내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 박지연 중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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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인정한다.그러나 차별은 없다'. 사관학교를 졸업하는 여생도를 모델로 한 어느 이동통신업체의 도발적인 광고 카피다.

한국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박지연(朴智沇.26.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중위는 차이조차 거부하는 겁없는 신세대 여전사다.

"전투기 조종이 힘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웬만한 체력만 갖추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조종사로선 크다고 할 수 없는 1m63cm의 키. 날렵한 체격과 맑은 얼굴에서 오히려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박중위지만 목소리는 당차고 힘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투기 조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박중위의 임무는 3만~4만피트 고공에서 혼자서 시속 5백~9백km로 전투기를 조종하며 적기를 명중시키는 것. 한눈에 체크해야 할 계기판만도 50여개. 버튼과 스위치 등을 합치면 1백여개를 시시때때로 작동해야 한다. 또 적기와 대치할 땐 방향을 마구 바꾸고 뒤집기도 해 조종사 머릿속은 피가 텅 비고 시야는 가려진다. 이런 고통 가운데 정신을 모아 바늘구멍 같은 목표물을 향해 사격하거나 미사일을 날려야 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아직까지 무섭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대장 김재권 중령은 "직접 훈련을 시켜봤는데 거뜬히 이겨내는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담력에 혀를 내둘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주일에 3~4일은 실전 같은 훈련을 한다. 평소 철통 같은 방위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주요 임무이기 때문이다. 비행을 앞두고 전문서적으로 이론을 익히고 틈틈이 테니스.축구 등으로 체력을 다지느라 쉴 틈이 없다.

박중위가 빨간 마후라를 목에 걸고 한반도 영공을 지키는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은 지난해 3월. 1997년 공군사관학교의 첫 여자 생도 열아홉명 중 한명이었던 그는 공사를 졸업한 뒤 2년간의 비행교육을 받고 여자 동기생 3명과 함께 나란히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현재 후배 한명이 가세해 여성 전투기 조종사는 모두 5명.

그가 공사를 지원한 것은 솔직히 장학금 때문이었다. 홀어머니를 돕기 위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물색하던 중 공사가 처음으로 여학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장 결심을 굳혔다. 평소 "남이 하지 않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도전정신도 강했던 터라 "일석이조다"싶었단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훈련은 혹독했다. 구보.유격.총검술.각개전투 등은 기본. 조종사가 되기 위한 2년의 훈련기간 중에는 공중조작.편대비행.중력내성.저고도 비행 등 온갖 고난도 비행기법을 배우며 금녀의 벽에 도전해 갔다.

"군대만큼 남녀 평등한 곳도 없다고 생각해요. 전문직이며 안정적이고 아직은 특혜도 많이 누려요."

군인임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활짝 웃는 박중위는 "후배들이 안주하지 말고 과감히 군대에 도전해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훈련기간까지 합쳐 이제 겨우 3백60여 시간을 비행한 새내기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도 할 일도 많다. 현재 주력기인 F-5 비행을 마치고 F-16기와 같은 최신예기를 타는 것이 올 연말까지의 목표. 올 연말 대위 진급이 예정돼 있어 계급장도 바꿔단다. 더 가슴 설레는 일은 4월에 동기생 정준영 중위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어서 국내 첫 부부 전투기 조종사라는 '첫' 기록을 또하나 만드는 것.

"결혼을 해도 당분간 출산은 늦출 거예요. 조종사의 꽃이라고 하는 편대장까지는 열심히 비행해야 하니까요."

먼 미래의 꿈은 공군의 정책 전문가라고 당당히 말하는 박중위. 그가 한 장 한 장 몸으로 써갈 공군의 새 역사가 자못 기대된다.

원주=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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