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강도는 못잡고 수금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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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진관파출소 경찰관들이 관내 주점.식당등 업소를 직접 돌며 부고를 돌리고 조의금을「수금」한 사건은 극도로 기강이 해이해진 우리 경찰의 한심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관내 업소로부터 갖가지 명목의「찬조금」을 받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라지만「송파서 떡값파문」으로 관련 경찰관및 간부 5명이 구속.직위해제된지 불과 2주만에 유사한 사건이 재발한 것이다.
당시 경찰수뇌부는 대대적인 인사조치와 함께 고질화된 비위를 근절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일선 경찰관들에게는 牛耳讀經이었던 셈이다. 경찰상층부가 개혁의지를 갖고 아무리 추상같은 명령을 내려도 일선의「손발」은 해묵은 관행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3인조강도 때문에 시민들이불안에 떨고 있어 비상근무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파출소 직원들은 서울경찰청이 전.의경등 전 경찰력을 동원해 일제 검문을 실시하고 있던 시각에 버젓이 경찰복 차림으로 순찰차를 타고 관내업소를 순회하고 있었다.
반면 경찰총수인 경찰청장을 비롯,경찰서장등 간부들은 대통령.
내무장관의 특별지시로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수사상황을 독려하는중이어서 서로 극명한 대조가 됐다.
「머리 따로 손발 따로」움직이는 경찰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물론 미꾸라지 한마리가 냇물을 흐리듯 타성.무사안일에 젖은 몇명이 사명감을 갖고 고생하고 있는 전 경찰의 명예를 더럽히고사기를 떨어뜨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범죄와의 전쟁」「범죄소탕 1백80일작전」등 계속되는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감치안이 날로 악화되고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경찰의 복무기강.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시민의 재산.생명을 노리는 강도들은 이틈을 비집고 마음껏 활개를 칠것이 아닐까 걱정이 아닐수 없다. 〈芮榮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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