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농지제도 바꾸면 농지 줄어들텐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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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틴틴 여러분, 지난주 정부는 논·밭을 사고 파는 제도를 확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지금은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갖기가 어려운데 앞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도 주말 농장용으로 꽤 큰 규모(9백평)의 농지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 입니다. 또 농사짓던 땅에 대규모 관광 시설이나 창고 등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자연히 농사짓는 땅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왜 농지를 줄일까요? 혹시 농지가 줄면 쌀이 부족해지는 건 아닐까요?

농지가 줄어들 게 뻔한데도 농지제도를 고치는 것은 쌀이 남아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0년 우리나라 사람 1명은 한해 동안 평균 1백20㎏의 쌀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83㎏을 소비하는 데 그쳤습니다. 13년간 쌀 소비가 30% 줄어든 것입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밥을 두 공기도 채 안 먹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쌀 재고는 점점 쌓여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쌀 농사가 23년 만에 흉작을 기록했지만 올해 쌀 재고는 7백만섬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유엔이 권장하는 적정 재고량인 5백73만~6백7만섬을 웃도는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1백14만ha(약 34억평)에 이르는 논을 30% 정도 줄여 80만ha(약 24억평) 정도가 되더라도 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지제도를 고치는 이유는 단순히 쌀 소비가 줄고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미국.호주 등과 쌀 시장 개방과 관련된 협상을 하기로 약속한 해입니다. 만약 쌀 시장이 개방되면 집 앞 수퍼마켓이나 할인점에서 우리나라 쌀의 4분의 1 가격에 외국 쌀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농업 문제를 연구하는 한 연구소에서 조사를 했더니 2명 중 1명꼴로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으면 수입 쌀을 살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농가는 쌀 시장이 개방되면 소득이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농사짓는 규모를 키워 외국 쌀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요즘은 농사도 기계화가 돼 3천평을 농사짓는 것과 1만평을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힘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규모가 크면 클수록 생산비는 적게 들고 소득은 많이 올릴 수 있습니다. 농림부에 따르면 농민들은 평균적으로 도시민보다 소득이 적지만 5ha(약 1만5천평) 이상 농사를 짓는 농가는 웬만한 회사원보다 많은 연 5천만원의 소득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농사를 지어달라고 논을 빌려주거나 농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을 허용할 생각입니다. 또 농지를 사고 파는 은행을 만들어 농민들이 농지를 손쉽게 거래할 수 있게 해줄 방침입니다. 농사로는 먹고 살기 힘들겠다 싶은 농민들은 전문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농지를 팔고 농사를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면 한 농가에서 농사짓는 규모가 커지고 생산비도 떨어져 값싼 외국 쌀과 경쟁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입니다.

그러면 농사를 그만둔 사람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요? 이 문제도 농지제도를 바꾸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농지는 모두 똑같은 논.밭이 아닙니다. 어떤 논은 넓은 평야에 있어 물 대기도 좋고 기계를 사용하기도 좋은 반면, 어떤 논은 그렇지 못합니다. 정부는 농사짓기 좋은 농지는 잘 보호해 질 좋은 쌀을 생산하게 하는 대신 농사짓기 불편한 농지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할 작정입니다. 주변 하천 등을 오염시키는 시설만 아니면 규모에 관계없이 각종 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농촌에 노인들이 지낼 고급 휴양소(실버타운)나 스포츠 시설, 관광 시설 등이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도시에 가까운 곳은 물류 창고나 공장도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농사를 그만둔 농촌 주민들은 이런 곳에서 취직해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농지제도만 바꾼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 사람이 농지를 활용해 대규모 관광시설을 세우고서도 농촌 사람을 고용하지 않거나 번 돈을 모두 도시로 되가져가면 농촌은 땅만 내주고 남는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또 무분별하게 개발해 환경을 훼손하거나 땅장사로 돈을 벌려는 투기꾼을 단속하는 일도 빠뜨려선 안될 것입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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