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법조 집단이기주의 개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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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률가의 대표적인 장기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는 재주다.남보기에 그럴듯한 외형을 갖추면서도 자신의 잇속은 결코 빠뜨리지 않는 것이 법률가의 습성이다.그러기에 좋은 법률가는 나쁜이웃이라고 한다.
대법원에 가동중인「사법제도발전위원회」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법률가의 전형적인 속성을 재확인하는 듯해 씁쓸하다.
새시대를 맞아「미래를 향한 새로운 사법제도의 기틀을 마련하기위해」각계각층의 인물로 구성되었다는 화려한 명분을 걸고 출범한「限時的」기구인 이 위원회는 대법원장이 부의한 26개 안건을 심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놓은 결론도 순진한 국민에게 실제로 뭔가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부판사제도」「영장실질심사제도」등 언론도 이러한 변화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다.가장 개혁하기 힘든 집단이라서 그런지 이 정도의 변화도 기대 이상이라는 보도 태도다.
그러나 자세히 내실을 들춰보면 개혁을 위장한 현존 기득권 질서를 지키려는 담합에 불과하다.위원회에서 개혁대상으로 논의되고있는 주제는 진정한 민주사법의 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지엽말단적인 것이 대부분이고,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법 조의 집단이기주의의 그늘에 가려 토론의 단상에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부의한 사안만 다루는 위원회를「범국민적기구」라고 내세우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다.
민주국가에서 사법제도와 기관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그러므로 법조개혁은 국민의 법률서비스 접근권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本報1월13일字 時評참조)사법시험을 포함한 법학교육과 법조인의 양성에 관한논의는 당초부터 외면되었다.국민의 입장에서는 변호사의 수적 증가가 절대절명의 과제인데도 판.검사,변호사 이른바「法曹三輪」집단은 합심하여 법률서비스의 독과점 공급권을 사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그런가 하면 상고허가제 를 두고 법원과 변호사의 입장이 갈리자 서로가 국민을 내세우면서 아옹다옹하고 있다.정말이지 가관의 이합집산이다.누구의 명분과 누구의 실리가 충돌하든피해를 보는 것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다.
「부판사」제도도 진의를 간파해보면 그다지 민주적인 발상이 아니다.판사의 연령과 경험을 둘러싼 불신의 세론을 의식해 정식 판사로 임명되기 전에 상당한 기간을 경미한 사건을 담당하는 부판사로 근무케 한다는 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현재 10여단계의 직급으로 세분되어 있는 관료제에 또 하나의 직급을 추가하는 屋上屋의 결과를 초래할가능성이 크다.부판사를 거친 사람만을,그리고 이들 전원을 판사에 임명함으로써 다른 법률직의 경력을 갖춘 사람 을 판사 임관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부판사의 대안으로「재판연구관」제도가 바람직하다.즉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사람은 재판 그 자체에 관여하지 않고 문헌조사등 재판의 보조업무에 종사하도록 한다.특히 최고 법원이 실무법원이 아니라「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자면 선판례 뿐만 아니라 국.내외의 정책을 연구,검토할 보조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대법관마다 1인씩 배정되는 중견법관 연구관으로서는 부족하다. 위원회의 안건에는 국제화.전문화 시대의 對국민 서비스에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전문법원.전문변호사 제도는 논의 밖이다. 정부와 국민은 「기술한국」 입국만이 21세기에 우리의 살 길이라고 하는데 정작 기술을 법으로 지켜줄 우리의 법관과 변호사는 기술에 무지하기 짝이 없다.기술 선진국에는 예외없이 특허사건등 국가 산업과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기술이 관련된 사건은 특별법원이 재판한다.
이러한 성격의 사건을 담당할 변호사도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의 법관은 신이고,우리의 변호사는 만능인인가.변호사 자격을「따면」덤으로 주는 자격증이 많다.특허사건을 다루는 변리사도 그 중의 하나다.그리하여 특허권을 침해당한 대한민국 국민은 과학 문외한인 변호사에게 비싼 보수를 지급 하고 벤젠 기호조차 모르는 판사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
***전문화.國際化와 거리 법조의 집단이기주의의 예는 이 뿐이 아니다.어느 나라에서나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최고법원에는 일정수의 비법률가 재판관이 참여할 기회가 보장된다.
우리나라만은 법률실무가의 법적 독점상태다.최고법원이 실무법원이 아니라 정책법원이라면 정치학자.추기경.대학총장등 일반 지성인이나 사회지도자가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최근 일본에서 관료 출신의 여성 대법관이 임명된 예에서 보듯이.
진정한 사법개혁은 법조집단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그리고 이제라도 위원회의「한시성」을 철폐하고 지속적으로 본질적인 개혁에 착수하기 바란다.
〈서울大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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