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방위의 내실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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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해부터 민방위교육을 편입후 5년으로 단축시킨 내무부 조치는 잘한 일이다. 별 효과도 없는 형식적 교육을 하면서 한창 생업에 바쁜 활동기의 남성을 40세까지 붙들어 두고 한해에 이틀씩 보내도록 한 낭비적 요소를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50세까지의 연 2회 소집훈련을 1회로 줄인 것도 운영의 개선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사생활 측면에서 보면 사실 민방위는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제도다. 더구나 그동안 이 제도는 박정희 유신정권 시대인 75년 태어날 때부터 특수한 시대상황 탓도 있었지만 일반국민들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예비군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안보종속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심지어는 주민통제 내지 정권안보를 위한 또 하나의 장치쯤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해도 우리는 지금 민방위제도의 존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지역과 직장을 예기치 않은 재해로부터 지키고,스스로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자위수단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아시아나항공기 사고나 구포 열차사고·서해페리호 사고처럼 대형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구난활동을 벌이는 민방위조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바 있다.
이같은 재해는 미리 막아야겠지만,산업화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곳곳에 아직도 그같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거기에다 지난 군사정권시절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이 거부감마저 갖게 된 남북간의 군사대치상황 또한 우리에게는 마음 늦출 수 없는 화재발생 요인이다.
그러나 이번 부산 식수파동처럼 1천만 지역주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낙동강 오물방류사태가 났을 때 보여준 것처럼 지역주민의 실제 생활위협에 대처하는 능력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재난의 형태 또한 다양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료조직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양상과 규모로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지금까지 형식적으로 운영돼온 민방위체제론 대응능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붙들어두고 시간만 보내온 지금까지의 교육훈련은 실제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훈련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역과 직장의 특성과 문제를 드러내놓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교육으로 획기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민방위체제는 덩치만 크고 몸값을 못하는 낭비조직이 될 수 있다.
효율적이고 자발적으로 대상자들이 참여하는 민방위체제를 갖추기 위해 정부당국은 지금까지의 형식 위주 안일한 운영과 빈껍데기 교육에서 탈피해 주민생활과 더욱 밀착시키고,지금까지의 보안개념에서 철저한 재난대비체제로 민방위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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