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하는 일본 정치개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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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혁은 어떤 시대,어떤 나라에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다해도 일단은 기성체제의 견제를 받게 마련이다. 일본의 연정세력이 추진해온 정치개혁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된 것도 바로 그런 경우다.
그것도 연정을 구성한 세력내부의 반발로 좌절됐다는데서 정치개혁을 기대해온 일본 국민들의 실망은 클 것이다. 지난 50년 가까이 일본 보수세력에 대항하며 개혁을 지향했던 사회당 소속 의원들이 대의보다는 정치적인 이해에 얽매여 법안 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에 실망감은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정치개혁법안은 현재의 중선거구제도를 바꿔 소선거구제 및 비례대표제를 혼합하자는 내용과 정치자금의 제공을 규제하자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쉽게 말해 돈드는 정치,부패정치를 그만두기 위해 우선 그 뿌리가 되는 선거제도부터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위 득표자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택할 경우 2∼6명이 당선되는 기존 중선거구제의 혜택을 받아온 사회당 의원들로서는 개인적으로나 당의 존립차원에서 문제가 된다. 게다가 연정을 구성한 정당중에서 사회당이 제1당이면서도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또 새로운 선거제도가 시행되면 사회당이 배제된 현재의 연정세력과 야당인 자민당의 보수 양당체제로 되리라는 것이 정설처럼 돼왔다.
사회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유있는 반발이다. 그러나 이 「이유있는」 반발로 일본 정국은 앞으로 상당히 많은 불안요인을 갖게 됐다. 최악의 경우 현재의 연립정권이 해체되는 경우도 상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현 정권이 그러한 시나리오까지는 갖고 있지 않다. 의회에서 재의에 부치는 절차가 있으므로 우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야당인 자민당과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아마 종전 직후 어려움을 겪은 이후 지금이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다. 유례없이 장기간의 경제적 불황에 빠져 있는데다 쌀시장 개방 등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여기에 정치개혁까지 겹쳐 지지부진하게 진행된다면 상당기간 일본의 정국은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은 비단 일본뿐 아니라 주변 여러나라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치게 된다는데서 우리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타협점을 찾아 안정되기를 바란다. 또 일본과 비슷하게 정치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로선 일본의 정치개혁 방향이 큰 관심거리다.
새로운 체제에는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비록 일단 주춤하기는 했으나 개혁은 새로운 시대적 조류라는데서 일본의 개혁을 지켜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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