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대한 경솔한 시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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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팔당수계 오·폐수 처리시설을 둘러싼 감사원과 민자당 및 경기도의 공방을 보면 이중으로 분노가 느껴진다. 1천8백만 수도권 인구의 상수원인 팔당수계의 39개 처리시설이 모조리 정상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충격적인 감사결과에 분노를 느낀데 이어 경기도가 한때나마 이런 감사결과를 얼버무리려는 태도를 보인데다 또 한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지사는 감사결과에 대해 지적사항 대부분이 이미 시정조치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뒤늦게 이런 사실을 터뜨리는 감사원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이 다시 사실조사를 해본 결과 시정조치가 완료됐다는 지사의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고,지사는 결국 아랫사람이 잘못 보고해 그렇게 됐다며 사과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민자당이 지사의 말만 믿고 감사원에 대해 무책임한다는 등의 비난을 퍼부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일을 한때의 해프닝으로만 치부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본다. 우선 경기도지사가 6백70억원이라는 거대한 예산이 들어간 오·폐수 처리시설의 실태를 전혀 모르고 있음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낙동강 오염파동으로 전국에 물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지사가 자기 책임 아래 있는 팔당수계의 처리시설 문제에 깜깜한 상태라면 이건 정상일 수 없다. 더욱이 자기는 실정도 모르면서 아랫사람의 말만 듣고 청와대와 민자당에 재빨리 해명서류부터 보냈다는 것은 우리 행정의 고질인 「면피주의」 바로 그것 아닌가.
민자당의 대응 역시 한심하다. 방대한 조직과 정책인력을 갖고 있고,또 한창 물문제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면서 경기도측 말만 금방 믿어버린 것은 민자당의 감각이나 문제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확인도 않은채 듣기 싫은 감사결과 보다는 듣기 좋은 경기도측 말에 홀딱 했던 것으로 볼 수 밖에 더 있는가.
우리는 김영삼정부들어 감사원이 제자리를 찾고 활기있게 자기 역할을 다하려 애쓰는 모습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팔당수계 처리시설에 대한 감사나 고속철도 감사 등을 보면 고무적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정도를 걷고 열심히 하면 할수록 감사대상이 되는 행정부 및 집권측과 긴장관계가 조성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아직은 그런 사례가 별로 없지만 앞으로 그럴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이번 일이 이런 범주에 드는 사례라고는 보고 싶지 않지만 껄끄러운 감사결과를 받아들이는 당정의 자세에 대해선 솔직히 말해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부패와 비효율·무사안일 등은 계속 개혁돼야 하고 그런 일을 하는 감사원의 위상은 확고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뜻이고,감사원을 이만큼 활성화한 것은 김 정부의 공로이기도 하다. 당정은 감사원이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 마련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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