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국제화 더 급하다/박의준 통일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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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대표였던 선준영 외무부 제2차관보는 얼마전 직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우리가 국제화,국제화라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의 탈바꿈』이라면서 외무부 관리들의 국제화를 촉구했다.
올들어 「국제화」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가운데 그의 말은 간단히 들어넘길 수도 있으나 한국의 국제화 수준과 관련해 국제관계에 첨병역할을 하는 외무부도 이 정도인데 다른부서는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돌이켜보게 해준다.
그가 국제화 무장을 촉구하며 지적한 우리 외교관의 부끄러운 현 주소는 외교관 하면 외국어에 정통하고 국제적 매너에 익숙할 것으로 아는 일반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협상이 잘 풀리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삿대질하거나 「쥐새끼 같이 생긴 ○자식」 「여우같은 ○」하고 욕을 해대거나 ▲협상하면서 그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아 상대와 대화할 수 없을 정도고 ▲이 때문에 서양 외교관들을 만나도 고작해야 자신의 교통사고 경험이나 얘기해 이들을 친구로 만들 수 없으며 ▲식사하면서 수프를 훌훌 소리내며 마시는 등.
이 가운데 전문지식이 얕고 외국어 능력도 문제라는 지적은 외교관들의 자존심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의 여러 지적을 종합하면 한마디로 프로다운 외교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이 외교관들이 전문가집단이 되지 못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그동안 우리 외교가 대북 적대외교를 근간으로 한 정무외교였던 것이 큰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지 않는 제3국과의 관계에서 상대를 적당히 구워삶아 「친한」 딱지를 붙여놓으면 성공한 외교였다.
진짜 밤을 세워서라도 이겨야 하는 문제는 「북한」이 걸리거나 외교술 부족으로 승부를 걸어볼 틈도 없었다.
외교관들이 국제흐름이나 경제 등 다른 분야를 아는데 소홀하고 「무사안일」에 빠졌으며,어학능력이 짧아 국제회의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외교관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외교관들은 국내에선 「선택된」 엘리트들이지만 국제무대에선 그리 자랑할만한 지식과 매너·경륜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고 외국인들과의 협상을 마음놓고 맡길만한 사람도 드물다는게 외무부 고위당국자의 고백이다.
한승주 외무장관도 지난해말 취임 10개월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우리 사회의 국제화가 안된 사실』이라고 말해 그의 실망을 간접 표시한 적이 있다. 뼈아픈 자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외교관들의 국제화와 프로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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