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입제도 변경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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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입제도를 또 바꾸겠다는 정부·여당 일각의 발상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보도에 따르면 대입제도가 복잡하다는 김영삼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당정일부에서 대학입시 자율화란 차원에서 수능시험 폐지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중지를 모아 만든 제도를 시행 첫해도 채 끝나기전에 복잡하다고 한 대통령의 판단도 그렇지만,덩달아 그것을 바꾸려는 여당 사람들의 「대담한」 발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대입제도는 대학이 전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적 행사다. 어떤 척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고교는 물론 중학·국교 교육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번의 대학입시에서 수학능력시험과 일부대학 본고사문제가 비판·논리·추리적 사고능력을 중요한 척도로 삼았다고 해서 앞으로 대학 전 단계교육은 문제해결 능력과 다양한 독서위주 교육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반성이 나오는 것도 그 증거다.
단순암기보다 종합판단능력과 창의성을 북돋울 수 있다면 그것은 국제화·세계화 사회를 살아가야할 차세대의 경쟁력을 기른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 제도에 의한 입시가 채 끝나기도전에 또 바꾸겠다는 발상이 나오고 있다니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모든 제도가 그렇지만,특히 10년 또는 1백년 앞을 내다보아야 하는 교육(입시)제도의 경우 어떤 인간을 길러내겠다는 뚜렷한 목표와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제도를 바꿀 때는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 다시 바꿔보자는 발상은 「복잡하다」는 대통령의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듯하다. 그것은 앞을 내다보는 타당한 논리는 되지 못한다. 감각적인 판단은 될지언정 합리적인 진단은 될 수 없다. 바꾸면 오히려 첫해는 더 복잡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입시제도다.
우리는 지금 정부·여당이 해야 할 일은 제도바꾸기의 검토가 아니라 고교 이하 교육의 정상화에 있다고 본다. 폭넓은 사고와 개성 및 창의성을 길러줄 수 있는 길이 어디 있는가를 찾고,국가는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학교육도 그렇지만 고교이하 교육활동을 바로잡고 살찌게 하기 위해 당정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어떻게 하면 개성을 존중하고 창의성을 계발할 수 있는가에서부터 시작하더라도 교과목·교육여건·교원양성 및 수급에 국가가 해야할 일은 끝이 없다.
교육개혁은 바로 그런 문제와 씨름하자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차세대가 국제사회에 나가 경쟁력 있는 국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국가에 있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제도나 바꾸는 한건주의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교육개혁의 산적한 과제들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문민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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