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개혁의 실과 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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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집권 2차연도를 「생활개혁의 해」로 정한 것은 국민의 공감을 살 것이다. 국민은 이제 개혁의 성과를 일상생활속에서 피부로 느끼고 싶어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이 7일에 있은 「생활개혁 보고회」에서 한 말들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제시된 10대 과제의 내용과 실천계획을 보고 나니 실망감이 앞선다. 제시된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각 부처가 추진해왔던 일,또 해당 행정기부로선 당연히 해야할 업무들을 나열해 놓은데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구상에 의한 과제선정이나 실천방법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는 생활개혁이라는게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국민이 느껴오고 개선을 기대해온 것들이 그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과제 자체가 신선감을 주지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라면 그 해묵은 과제들에 대해 「우리는 이러한 접근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새 방향과 수단의 제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천계획을 봐도 그러한 것은 없이 그저 각 부별 행정계획만을 나열해 놓았으니 언제는 안해왔던 일인가 하는 느낌밖에 안드는 것이다.
선정된 생활개혁 과제가 계획대로 실천되려면 적어도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예산이요,다른 하나는 인력이다. 가령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 공급」이란 과제만 해도 이를 실천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다. 상수원 보호 및 관리를 철저히 하자면 막대한 인력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에 관련된 예산과 인력배정은 이미 지난해에 짜여 현재 집행되고 있다. 그러니 새로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해진다. 다만 국민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계획된 것을 꼭 실천하겠다는 정부의 재다짐뿐인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이번에 선정한 10대 생활개혁 과제를 앞으로의 중점 행정계획으로 삼기를 권하고 싶다. 그래서 이들 과제에 대한 성과를 집권기간 안에 거두고 싶다면 올해부터 새로운 집행계획을 세워 내년 예산안에 이들 부문에 대한 예산을 중점배정하고 관련 인력도 재배치하며 기타 법과 제도·조직의 정비도 올해안에 끝내야 한다. 그런 사전준비가 있어야 비로소 계획이 실천될 수 있으며,그렇게 하는데서 역대 정권과의 정책적 차별성이 드러날 것이다.
김 대통령은 「1년안에 성과를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게 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통령의 바람은 국민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과제들의 성격으로 볼 때 1년안에 그런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나치게 성급히 성과를 거두려다 보면 부작용이 빚어지게 마련이다. 욕심을 내기 보다는 올해를 준비기간으로 삼아 내년부터 실천에 들어갈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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