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봉급인상 적기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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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하는 일은 그 내용도 합리적이어야 하지만 일처리의 순서를 제대로 지키고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은 올바른 정책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다.
김영삼정부의 제2기 내각이 구성된후 신임 총리와 각료들이 쏟아낸 새로운 포부와 시정방침들의 일부가 일말의 불안감을 던져주는 것은 바로 이런 요건들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현재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 봉급의 추가인상이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확정된 봉급인상분 6.2%에다 3∼5%를 추가로 인상하기 위해 재원조달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이 작업은 이회창 신임총리의 특별지시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봉급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있고,공직사회의 부정을 원천적으로 막는 길이 공무원 처우향상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과연 지금이 추가인상을 검토하기에 적합한 시점이냐 하는 것이다.
금년도 공무원 처우개선의 구체적 내용은 이미 작년에 새해 예산을짜고 심의하는 과정에서 일단 매듭지어진 것이다. 예산안이 통과된 것은 불과 한달전의 일이다. 금년도 예산을 편성한 주체는 전 정부가 아닌 현정부였다. 한달새 공무원 처우개선과 관련해 생각을 바꿔야할만한 상황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더구나 재원염출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산전용,추경예산 편성,예비비 사용의 어느 방법도 공무원 봉급의 추가인상을 위한 임시변통으로는 합당치 않은 것이다.
공무원 봉급의 인상폭이 민간부문의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없다는 이치는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 근로자들의 임금협상 자세가 공공부문의 임금동향에 매우 민감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특히 금년에는 고물가­고임금의 악순환이 어느 해보다 무겁게 우리경제를 짓누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년도 임금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에 대한 정부의 세부방침은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적어도 금년도 임금안정 정책의 뼈대만이라도 확정짓고 작년처럼 대기업의 임금동결이나 소폭인상을 유도할 것인지,아니면 완전한 자율에 맡길 것인지를 분명히 한 다음 이와 연계시켜 공무원 봉급조정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기왕 공무원 처우문제를 검토하기로 했다면 비단 봉급인상 뿐만 아니라 인사적체 해소와 복지대책을 포함시킨 공직사회의 사기진작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금년부터 실천에 옮기되 재원 염출에 무리가 있는 부분은 내년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년에는 동결했다 금년에는 두번 올리는 식의 변덕을 버리지 않고는 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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