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세대의 문화코드2] 걸&가이,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8월 13일 11:00 AM
느즈막히 일어나 ‘아점’을 먹은 21살 대학생 신지은씨. 어젯밤에 직접 그림을 그려 완성한 스니커즈를 신고 소마 미술관으로 향한다. 길을 가는 동안 수 많은 스니커즈를 봤지만 모두 ‘똑같다’.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스니커즈는를 신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날아갈 듯 하다. 오늘은 남자 친구와 함께 ‘새로운 팝아트’라 불리는 프랑스의 ‘누보팝’전을 보기로 한 날이다. 평소 미술을 어렵다고 생각해 온 그녀지만 캠벨 수프 캔이나 브릴로 세제 봉투, 마릴린 먼로의 그림 등 친숙한 소재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팝 아트’가 재밌다고 평소 생각했다. ‘복제된 모나리자 수호견’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제목의 작품에서 모나리자로 만든 플라스틱 방석과 이를 지키는 플라스틱 푸들이 등장한다. ‘1,000송이의 꽃’은 콘돔과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꽃과 새싹이다. 개사료 페디그리, 인간사료 켈로그에 현대인의 이야기를 담은 ‘리얼타임’ 연작도 돋보인다. “‘이런 게 예술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예술? 별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소재도 낯익고, 작가와 쉽게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3:00 PM
“까페 라떼 두 잔 주세요.” 주문을 마친 그녀는 바리스타의 화려한 손놀림에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우유 거품을 이리저리 따를 뿐인데 순식간에 완성되는 나뭇잎과 하트 무늬가 신기하다. 작품이 망가질까 염려하며 조심스레 커피를 마신다.

3:30 PM
그와 그녀의 아지트인 홍대 앞. ‘희망 시장’은 몇 년 째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 쇼핑 장소다. 팔겠다고 갖고 나오는 물건, 파는 사람, 사는 사람들의 개성까지 합쳐져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이 곳에서 그들이 특히 열광하는 건 일러스트 티셔츠. 티셔츠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옷 중 하나지만 여기에 아티스트들의 감각이 더해지면 소장하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미술 작품이 된다. 오늘도 한 젊은 작가의 일러스트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는 그녀의 남자 친구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만 하면서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잖아요. 비록 티셔츠 하나지만 예술가들은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우리는 개성 있는 작품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지금 저의 1순위 애장품은 며칠 전에 산 ‘슈팅 스타’라는 핸드폰이에요. 디자인에서 저 못지 않게 개성이 철철 흐르거든요? 처음 보는 순간 딱 제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가 핸드폰을 꺼내서 자랑한다. 우주비행사의 옷처럼 보이는 화이트 컬러에 모던한 그린 컬러가 주는 미래적인 감각. 손에 착 붙어서 “찰칵” 소리가 나며 미끄러지듯 돌아가는 사용감이 독특하다. 양쪽 날개를 쫙 폈을 때의 모습이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강력한 반면 폭신폭신한 터치 패드의 느낌은 다른 핸드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최대 강점.

7:00 PM
그녀는 최근 한 공방에서 1주일에 2시간씩 북아트 강습을 받는다. 북아트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평소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던 차에 남들과 똑같은 일기장에 내 특별한 삶을 적는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 ‘공방’이라는 왠지 아트적인 냄새가 나는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재료로 내 개성이 담긴 단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소장할 수 있다는 기쁨은 기대 이상이다. 이미 지난 겨울의 유럽 배낭 여행 사진들을 엮어 ‘신지은의 유럽 遊覽記’를 완성했고 다음은 가족들의 20년사를 정리해 가족 앨범 ‘辛가네 이야기’에 도전할 계획이다. “나만의 제품을 만들면서 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또 완성했을 때 성취감도 느껴집니다.”

그와 그녀의 하루가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달라 보이는가? 당신의 느낌은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인사동이나 삼청동 거리에만 가도 널린 것이 갤러리 안의 ‘예술’ 작품. 누구나 하루 한 잔 정도는 마시는 브랜드 커피,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하루 만에 책이 도착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하루가 어딘지 달라 보이는 이유는 누구나 쓰고 누구나 즐기는 것에 약간의 개성과 창의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Why Not 세대의 정체이며 그들이 즐기는 ‘어딘지 낯익으나 개성적인 문화’는 새롭게 뜨고 있는 ‘매스 아트’다.

대중ㆍ대량 생산된 물건을 뜻하는 ‘매스(mass)’에 개성적인 터치를 뜻하는 ‘아트(art)’가 붙은 매스 아트는 특별한 소수와 별난 괴짜, 내 개성만 아는 오타쿠의 문화가 아니다. 일정한 울타리 안에 존재해 딱히 경계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의 정성을 더해 ‘특별한 나만의 것’을 갖는다는 기분이 드는 것. “예술은 왜 꼭 어려워야 할까? 핸드폰은 다 똑 같은 모양이어야 할까? 세상에 단 한 권 나만의 책은 없을까?”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세상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매스 아트’다. 매스 아트는 개성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존중하며 미적 감각을 가진 Why Not 세대의 욕구와 딱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그들이 이끄는 새로운 문화 코드로 인식되고 있으며 Why Not 세대를 공략하려는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기존의 브랜드 컨셉트에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덧붙여 리미티드 에디션이 나오는가 하면 소비자들이 직접 ‘튜닝’할 수 있는 제품이 출시된다. 차고 넘치는 핸드폰 중에서도 나만의 개성을 담은 혁명적인 디자인으로 탄생되기도 한다.

[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