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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시대의 나라틀 만들기(중앙일보 신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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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해나 특별하지 않은 해가 없는 법이지만 금년은 더욱 그렇다. 국내외 정세가 격변속에 있어 지금 하기에 따라 나라의 부심이 갈리기 때문이다.
세계정세도 그렇고,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정세도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천하대란기라 할 수 있다. 냉전시대,어느 한쪽의 변방에서 그냥 대국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게 되어 있다.
작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듯 나라간의 국익다툼이 치열하다. 이념적 연대보다는 실익추구가 우선되고,세계는 다시 한번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구적 규모의 판도 재편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정세 예측불허
그 틈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우리 실력밖에 없다.
한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정세도 구 소련의 혼미,중국의 개방과 시장경제 가속,일본의 정치변혁,동남아권의 대두 등으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도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전통적 특별배려가 약화되고 있다.
더 가깝게는 북한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 핵은 이미 표면화된 문제지만 오랜 교조적 폐쇄사회가 도도한 역사의 물결속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한국과 우리 민족의 명운에 직결된다.
좋은 방향이든,나쁜 방향이든 북한의 변화는 금년에 어떤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의 한국정세는 1백여년전 한말의 그것과 많이 비유된다.
열강의 치열한 각축과 강한 개국압력 내부진통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을 제2의 개국기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백여년전 제1의 개국때 한국과 일본은 부심의 길을 달리했다. 이번 제2의 개국도 나라의 백년을 결정할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다.
이런 미묘한 내외정세속에서 어떻게 나라의 진로를 잡고 국제화시대에 맞는 「나라만들기」를 할 것인가가 금년의 핵심과제가 될 것이다.
세계정세를 보거나 나라안의 형편을 보거나 대담한 개방과 국제화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흐름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또 우리의 경제적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 국제화의 물결을 능동적으로 타야 한다. 위기는 찬스가 될 수 있다.
○번영과 좌절의 기로에
UR로 인한 지구촌 경제가 역사적 추세라면 이를 두려워하거나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잘 활용하는 지혜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또 국제화는 우리 사회의 낡은 틀을 바꿀 좋은 계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의 보편타당한 의식과 제도·관행·시스팀과 동떨어진 것이 너무 많다.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정부 서비스·기업·기회균등 등의 개념에서부터 한국적 폐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극히 비문명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오랜 군사독재의 잔재 탓도 있지만 문민시대에 들어서도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참다운 민주주의,진정한 시장경제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 첫해에 요란한 개혁의 나팔이 울려퍼졌으나 사회시스팀을 바꾸는데까진 생각도,힘도 미치지 못했다.
작년의 일들은 분위기를 쇄신하고,오랜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통과의례라는 점에선 뜻이 있다.
○시급한 사회구조 개혁
그러나 금년까지 작년의 연장이 되어선 안된다. 금년엔 실질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국제화의 물결속에 함몰되고 만다.
마침 작년말 일대 인사쇄신이 이루어져 국정개혁의 신호는 올랐다. 진정한 개혁은 금년의 당면과제인 국제화나 경제활성화와 표리관계를 이룬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길은 국제화전략밖에 없고,국제화시대에 맞게 우리의 정치·사회·경제시스팀을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적 번영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혁은 사정적 접근보다 시스팀을 바꾸는 일에 치중해야 하며 그것은 국제화시대에 맞는 「나라틀 만들기」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시스팀이 모두 낡았지만 그중에서도 정치·행정·교육·재정 등 나라의 토대를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 적어도 금년엔 4대 개혁의 전략을 짜서 내놓고 기초를 놓아가야 할 것이다.
나라 일을 효율적으로 논의할 수 있고,민주주의의 코스트를 가장 줄일 수 있는 정치개혁이 그중에서도 급하다. 새로운 정치시스팀이 돼야 다른 개혁을 논의·수렴·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개혁은 공공서비스의 증진과 시장경제 창달을 위해 필수적이다. 개발독재시대의 낡은 틀을 과감히 부수고 국제화시대에 맞는 행정조직과 기능이 급하다. 행정의 능률과 창의성 없이는 국제화시대를 유연하게 넘길 수가 없다.
교육개혁은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기초라도 놓아야 한다. 지금의 교육시스팀으로는 국제인을 도저히 길러낼 수가 없다. 인간의 창의와 자질을 계발하고 한사람 한사람을 고부가화할 수 있는 대담한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국민 모두가 힙 합쳐야
재정개혁은 행정개혁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방대한 공공자원의 최적배분을 위한 것이다. 지금의 재정구조는 개발독재시대의 그것으로서 낭비가 너무 많고 국제화시대에 맞지 않는다.
이런 4대 개혁을 금년엔 시작해야 한다. 또 그것을 온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의 방향은 국제적 보편 타당성을 지니고,또 온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돼야 한다.
국정쇄신을 통해 국내 시스팀이 정비돼야 UR대책도,국제화시대의 경쟁도 자신있게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개국에 따른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눈을 좀더 밖으로 돌려 세계적 기준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또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본지가 금년에 「밖을 보자」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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