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후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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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10일 이후 중공업체인 A사 외환 담당 부서엔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는 해외수출 계약을 맺고 결제는 1~3년 뒤 달러로 받기로 했다. 그러나 그동안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달러 표시 선물환을 은행에 팔기로 했다. 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은행은 A사에 달러를 주고 선물환을 사들이게 된다. 그런데 최근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중에 달러가 고갈되면서 어느 은행도 선물환을 사려 들지 않았다.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 닥스(DAX) 전광판 앞에서 한 증권 거래인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위기에 대한 우려로 지난주 하락세를 보였던 유럽과 아시아 증시는 이날 반등세로 돌아섰다.[프랑크푸르트 AP=연합뉴스]


이 회사 관계자는 "13일부터 일부 은행이 선물환을 사주고 있지만 규모가 준 데다 거래 조건도 나빠졌다"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같은 수출업체는 환율 변동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금융시장에서 달러화 돈줄이 말라 가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국제 금융시장의 달러화 기근 사태가 국내 시장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유럽.일본.호주의 중앙은행은 이를 막기 위해 대량의 자금을 시장에 공급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럽은 부족한 달러를 미국과 교환(스와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한국 금융당국은 느긋하다. 시장의 혼란과는 달리 아직은 달러 부족 사태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서도 달러 구하기 비상=10일 원-달러 환율은 단번에 9원이 올랐다. 지난해 북한 핵 위험이 부각되면서 14.8원이 오른 이후 최대 상승 폭이었다. 시장에서 달러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그만큼 달러 가치가 오른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완화된 13일 환율은 소폭(2.3원) 내렸지만 14일 다시 2.8원 오르며 932.5원으로 장을 마쳤다.

달러의 수급 불안은 그동안 단기외화자금의 조달 창구 역할을 했던 외국은행 국내지점이 더 이상 본점에서 달러를 들여올 수 없게 되면서 시작됐다. 외은 지점의 달러 조달이 차질을 빚자 수출업체들이 선물환을 파는 데도 차질을 빚게 됐다.

게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10일 이후 국내 증시에서 3거래일간 1조1800억원어치를 팔아 치운 것도 달러 고갈에 영향을 미쳤다. 한 술 더 떠 일부 은행은 가치 상승을 예상하고 달러를 공격적으로 사들여 달러 기근을 부추겼다. 이렇게 되자 일부 외은 지점들이 한국은행에 달러화 공급을 요구했지만 한은은 거절했다. 한은 관계자는 "달러 유동성을 점검한 결과 아직 중앙은행이 개입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은 지점 관계자는 "국내에서 원화는 넘치고 달러는 부족한데 금융당국은 시장 불안 때 원화를 더 풀겠다는 엉뚱한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외선 달러 공급 확대 주력=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로화와 달러를 맞바꾸는 통화 스와프도 추진하고 있다. 달러 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 시중은행들을 위해서다. 특히 달러 표시 부채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일부 유럽 은행은 달러 자금 조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장이 불안해 돈을 빌리거나 연장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준현.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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